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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 2’ 보고 모하나 남겨 봄

딸과 오랜만에 영화관 데이트

by 스토리밤


모처럼 한가한 주말이었다. 날씨가 겨울이라고 부쩍 추워졌다.

한 달 넘게 집 안을 돌고 있는 감기 때문에 지난 주만 해도 아이들이 차례대로 병원행이었다. 자연스레 외출을 삼가게 되었고, 아이들과 이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마땅한 계획도 없어서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와 같은 육아공동체인 남편이 나에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토요일 아침을 먹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더니 나에게 말했다.


"앗! 잊고 있었네. 나 가지고 있던 영화관람권 오늘까지다."


"그래? 보러 가야겠네."


" '모아나 2' 개봉했다는데 베라랑 자기 영화관 갔다 와."


나는 영화를 보고 오라는 남편의 말에는 내심 기뻤지만, 딸과 둘만 갔다 오라니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응? 방톨이랑 자기는 안 가?"


나의 의아한 물음에 남편이 미처 답하기도 전이었다. 거실에서 남편과 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으면서 안 듣는 척 놀던 아이들이 서로 질세라 말하기 시작했다.


"영화관? 난 안 가! 아빠랑 집에서 놀 거야."


방톨이 큰 소리로 외치자 베라가 다시 외친다.


"난 '모아나 2' 보러 갈래!"


그런 아이들을 쓱 둘러본 남편이 말을 이었다.


"방톨이 또 무섭다고 할 수도 있어. 저번에 '인사이드 아웃'도 무섭다고 제대로 못 봤잖아."


"흠. 그러긴 했지."


"'모아나 2'도 그래픽이 화려하다고 하더라고."



문득 '인사이드 아웃 2'가 개봉했을 즈음이 떠올랐다. '인사이드 아웃 1' 영화도 미처 보지 못한 아이들이었기에 1탄을 집에서 먼저 보여주고 2탄을 영화관에서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영화를 볼 동안 나는 보고 싶었던 책을 보겠다고 계획을 세웠었다.


나름 영화관 분위기도 낸다고 집에서 팝콘도 튀겨서 고소한 냄새를 폴폴 풍겼다. 팝콘을 나눠주며 아이들에게 '인사이드 아웃 1'을 틀어주고 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관련된 것인지라 이번에도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는데.


첫째 베라는 영화에 집중해서 잘 보는데, 방톨이 무섭다고 나에게 와서 내 품에 안겨서 영화를 제대로 못 보는 것이었다.


"그럼 아예 보지 말까?"


다른 방에 가 있자고 방톨을 달래도, 소리가 나니까 결국 TV앞으로 가서 보면서 나에게 매달려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베라는 영화를 잘 보니 끌 수도 없고,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를 끌어안고 있었야만 했다.


전체관람가인 영화에서 방톨이 무서워하는 부분은 큰 소리가 나거나 급격하게 번쩍거리는 화면전환이 일어나거나 하는 부분 등이었다.

그러고 보니 첫째 베라도 어릴 적에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가면 무서워했다.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서 체험학습으로 영화관을 가게 되면 무서워서 울었다고 하는 선생님의 말이 많았었다.


하지만 그런 베라는 초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영화를 보는 것도, 공연을 보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방톨의 이런 모습도 일시적이려니 생각을 하고 그냥 받아들였다. 결국 영화관에서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러 가는 것은 방톨의 거부로 베라만 갔다 왔었다.



지난 기억을 떠올리곤 결국 베라와 나 둘만의 영화관 나들이가 이루어졌다. 영화관 안은 학생들과 어른들로 꽉 차 있었다.


'모아나 1'의 유명한 ost는 알지만 급하게 추진하느라 1탄도 안 본 베라와 나였다. 혹시나 1탄과 내용이 연결되어 2탄을 보는데 지장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다행히 어려움은 없었다.


적당한 위트와 화려한 그래픽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다만 중간에 어두운 장면에 베라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엄마, 무서워."

"괜찮아."

작은 손을 다시 꼭 잡아주며 다독이자, 이야기가 흘러가며 곧 아이의 손에서 긴장감이 사라졌다.

영화 절정 부분에서는 나는 마음이 괜히 찡해져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고, 슬쩍 베라를 보았다. 눈물 많은 베라 역시 작은 손으로 조심스레 눈물을 닦아내는 것이 보였다.


어느새 커서 어른스럽게 이렇게 영화를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이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싶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며 조용해진 베라에게 나는 물었다.

"영화 어땠어? 베라야?"

"재미있었어. 엄마는?"

"엄마도 생각보다 재미있었어."


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나 애니는 되도록이면 아이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말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은 클수록 잔소리로 치부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영화나 애니로 보여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는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아닌 내면을 울리는 가르침으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모아나 2' 역시 마음을 울리는 교훈이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베라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베라도 뭔가를 하다가 안 돼서 좌절할 때 많이 울잖아."


"음."


"그럴 때 울지만 말고, 모아나처럼 ㄷㄹ ㄱ을 잘 찾았으면 좋겠어."

(혹시라도 스포가 될까 봐 영화 보실 분들을 위해 초성처리 합니다.)


"응 알겠어."


아이의 안색을 살펴보니 베라는 거부감 없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평상시에도 조금이라도 실패하면 좌절하고 우는 베라의 모습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아직 어려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조금만 실패해도 좌절하는 것이 앞으로의 삶의 태도로 돼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영화로 아이의 내면이 한 뼘 더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과 아들 방톨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거실을 보니 둘이서 블록으로 이미 멋들어진 집 한 채를 완성했다.


"엄마 보고 싶었어!"


격하게 나에게 안겨오는 작은 방톨을 안아주며 달랬다. 남편이 살짝 장난 섞인 목소리를 말을 걸었다.


"방톨이 '모하나' 안 보고 모 하나 안 궁금했어?"


"……."


갑자기 팔에서 살짝 오소소 닭살이 올라왔다.


"혹시 방금 아재개그 한 거야?"


나는 순간 되물었다. 분위기가 파랗다 못해 하얗게 변하며 공기가 어색해질 찰나였다.


베라가 그 소리를 듣더니 남편 앞에 가서 박장대소를 했다.


"와하하! 아빠 너무 웃겨! 와하하!"


평소에도 아재개그를 좋아하며 자주 나에게 선보였던 베라였다.

자지러지며 웃어대는 베라의 모습에 남편 과니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는 게 보였다.


"딸이 최고다! 그렇지?"


"잉! 그럼 나는!"


요즘 부쩍 질투가 많아진 방톨이 나에게 툴툴거렸다. 방톨을 달래고 안아주며 베라의 웃음소리에 전염되어 나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부전여전이라더니. 반달모양의 몽글몽글 웃음이 가득한 눈이 아빠와 딸이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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