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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Feb 28. 2020

3. 조기폐경을 진단받던 날

[20대 조기폐경 극복 에세이 3 ]

청소년기 때부터 생리(정혈)가 불규칙했던 적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대수롭게 여기진 않았다. 그저 ‘공부하는데 에너지를 쏟다 보면 몇 번 그럴 수도 있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20대가 되자 생리를 안 하고 넘어가는 달이 꽤 길어졌다. 그때도 ‘그럴 수도 있지’하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게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동네 병원을 방문했다.


병원을 방문하던 날이 생각난다. 우선은 굴욕 의자(검진용 쩍벌 의자)에 앉을 테니, 여성 의사여야만 했고, 후기가 좋아야 했다. 내 나름의 기준으로 그 병원을 선택했다.


몇 가지 질문을 받고 초음파 검사와 피검사를 했던 것 같다.


사실 검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네.. 스트레스성 생리불순입니다. 호르몬제 처방해 드릴게요"라는 답을 기대했었다.

지금까지 그랬고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갔으니까.


그런데 의사 선생님의 반응이 사뭇 달랐다. “ FSH(난포자극 호르몬) 수치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소견서를 써드릴 테니 큰 병원을 가보세요”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서 실감도 나지 않았다. ‘에이.. 그래도 아직은 아니겠지…’하는 실낱같은 희망은 잡고 있었다. 큰 병원 가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


폭풍 검색을 해서 그나마 집에서 멀지 않고, 이 분야에 특화된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예약을 했다.

기분이 정말 착잡했다. ‘진짜면 어떡하지? 진짜면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라고 질문을 계속 던졌다.


전문의를 만나서 진행했던 검사는 첫째로 , 1차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게 피검사를 했다. 그리고 FSH 수치를 보고 확진 판결을 받았다. “의학 용어로는 조기 난소 기능 부전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20대 환자들이 간혹 있긴 한데, 나이는 많이 어리신 편이에요”


나도 아는 얘기를 남의 입에서 들으니 더 기분이 별로였다.

Photo by Frederick Tubiermont on Unsplash


“이제 결과는 알았으니, 원인이 유전적인 것이 원인인지 확인하는 검사를 진행할게요. 이 검사를 하고 나서 만약에 유전적인 게 원인이라면,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면 지적장애인을 출산할 확률이 높습니다.”


검사 비용만 60~70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검사 결과를 받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확진 판정을 받고 나서는 드디어 실감이 크게 났고,  임신과 출산까지는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당장 내가 사는 게 어떻게 바뀔까 두려웠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다.

결론적으로 ‘유전적 원인 없음’이었다. 그럼 그렇지, 가족 중에 이런 증상을 겪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건강한 편이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정해져 있었다. 당시 나는 사회초년생으로, 회사에 입사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던져진 상황에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고, 나를 싫어하는 그 사람은 미친개처럼 나를 괴롭혔었다. 이 모든 상황을 몸이 받아들였다면 어떻게든 아플 수 있다 생각했는데, 그게 조기폐경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그 새끼가 미친 듯이 미웠다. 고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당시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발현되기 전이어서 뭔가 제대로 해보기도 쉽지 않았다. 용기도 없었다.


사람도 밉고, 상황도 밉고, 나 자신도 싫고 여러모로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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