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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Feb 28. 2020

5. 내가 겪은 조기폐경 증상들

[20대 조기폐경 극복 에세이 5]

1) 폐경이라고 해서 생리(정혈)가 무 잘리 듯 댕강 끝나는 게 아니다.

‘조기폐경’ 그러니까 생리(정혈)가 이른 나이에 끝났다고 하면 정말로 순식간에 끝인 줄 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생리(정혈) 시기가 돌아오면 PMS(월경전 증후군)를 겪는다. 우울감, 피로감, 아랫배, 허리 통증 등 진짜 생리(정혈) 때와 똑같은 증상을 겪는다. 그리고 배출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해소되지 않고 PMS도 길어진다. 매달 혹은, 몇 달을 간격으로 길게는 2주~3주씩 이런 증상이 있었다. 단순히 컨디션이 안 좋은 게 아니라 ‘진짜! 정말 온몸이 모든 힘을 다해서’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아, 여드름도 난다. 얼굴과 몸에 여드름이 올라온다.

아직은 내 몸에서 생리(정혈) 비슷한 걸 하려고 호르몬들이 노력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무 자르듯 댕강 끝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수도꼭지 잠기듯,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2) 우울증

조기폐경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나이에 폐경을 맞는 여성들도 흔히 겪는 증상이다.

우울증까진 아니어도, 우울감은 겪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이 우울증이라는 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심해진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거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갑자기 몸이 늙어버리는 건 아닐까?, 나한테 달라지는 건 뭐지? 나는 그럼 생물학적으로 여성성이 사라지는 건가? ’


생각이 곱게 들 리가 없다. 힘든 게 맞으니까. 눈물도 자주 나고, 화도 나고, 무기력하기도 하고 ,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공감할 대상을 찾기가 어려운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였다.


1000명 중에 1명꼴이면 내 가까이에도 있다는 뜻인데 당장 찾을 수가 없으니 하소연하기도 쉽지 않았다.

우울감이 심해지고 좋지 못한 생각이 들었을 때 다행히 정신과 치료를 먼저 받았다.

약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 상담도 도움이 된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스스로 버티면서 나 자신을 갉아먹는 것보다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영원히 우울할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것이긴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나락을 찍는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고 인정하고 전문가를 만나는 것을 추천한다. 한번 용기를 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정말 쉽다.

자꾸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면 내 몸을 챙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과 치료, 상담, 자조집단 이렇게 삼박자가 골고루 갖춰지는 상황이라면 제일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울증 치료부터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3) 무력감

우울증이랑은 또 다르다. 이것은 본인이 원래 어떤 생각을 했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만약, 출산을 평생 바랐던 사람이라면 당장 난자 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일반적인 출산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무력감을 느낄 것이다.

혹자는 아기를 낳는 것과는 별개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게 분명 아픈 게 맞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껄끄럽고, 말하는 순간 하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결혼을 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상대방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고 , K-유교 국에서 상대방 부모님께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생각하다 보면 ‘아 그냥 혼자 사는 게 편하겠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Photo by Christopher Campbell on Unsplash


4) 안면홍조

조기폐경이나 그냥 폐경이나 폐경은 폐경이다. 차가운데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들어온다던지 온도차가 심하게 나는 상황이면 종종 안면홍조가 생긴다. 안면홍조가 심해지면 얼굴이 갑자기 촌스럽게 불타는 고구마가 된다. 꼭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 “어, 그냥 얼굴이 좀 탔나 봐”, “ 아 내가 귀찮아서 로션을 안 발랐더니 텄다.” 내가 상대방에게 민망함을 주지 않고 합리적인 선에서 대답했던 말들이다.

경우에 따라서 금세 괜찮아지기도 하지만, 얼음찜질을 해서 가라앉혀야 될 정도로 오래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진짜 짜증이 난다. 얼굴에 뭘 발라도 가려지지도 않는다.

시간이 좀 지나서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5) 불면증

잠이 안 온다. 잠이 많이 안 온다. 걱정이 되고 신경이 쓰여서 잠이 안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냥 잠이 안 올 수도 있다. 따뜻한 우유 마시기, 샤워하기, 자기 전에 야식 먹지 않기, 각종 수면유도 영양제 먹기 등 안 해본 게 없다.

애매하게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병원을 방문하자. 잠을 못 자면 -> 그다음 날이 피곤하고-> 그다음 날 능률이 떨어지면 ->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잠을 못 잔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전문가를 찾아가자. 한 번에 수면제 100알씩 주고 그렇지 않다. 본인에게 필요한 정량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다. 평생 약에 의존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단 살고 보자는 이야기다.


5) 머리카락이 얇아지거나, 흰머리가 생기거나, 빠지거나

나 같은 경우는 머리카락이 많이 얇아졌다. 흰머리 얘기도 부쩍 듣는다. 그냥 조금 빨리 왔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염색을 하거나 내 머리카락을 부정하진 않을 거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스타일은 다르겠지만 이건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머리카락이 아직 남아있는 것에 감사하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건 받아들이고, 어쩔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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