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기에 들어오면서 집에서 하이볼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한참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어 박사과정 마지막 해와 그 직후 포닥 기간을 집에서 보냈다. 2년을 꼬박 집에서 일하고 공부했지만 그렇게 답답하지는 않았다. 믿기지 않지만 마스크를 쓴 채 러닝을 하고 중간중간 자전거도 타러 나갔던 덕분인 것 같다. (수영을 못 가게 된 게 답답하긴 했다.) 가끔 부모님을 따라 등산도 갔다.
집에 럼을 한 병 사 두고 밤에는 칵테일을 만들어 마셨다. 그러다 하이볼에 정착한 것이다.
지금도 하이볼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편의점 하이볼이 아주 다양해졌지만 웬만한 것들은 너무 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넓은 뚜껑을 따면 탄산과 함께 레몬이나 청귤 슬라이스가 떠오르는 캔 하이볼도 맛있긴 하지만 어느 날은 입에 너무 달다. 그런 날은 베이스 술(지금 집에는 진이 있다)에 탄산수와 얼음을 붓고 설탕 아주 조금과 레몬즙 또는 라임즙을 넣어서 하이볼을 만든다.
한동안은 리몬첼로로 하이볼을 만들기도 했다. 이유는 집에 리몬첼로가 있어서. 어차피 레몬술이라면 레몬즙을 안 넣어도 레몬 맛이 날 것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약간 뿌연 레몬색 하이볼이 되었는데 만족스러웠다. 집에 라트비아에서 사 온 40도의 전통술도 그대로 있는데 이걸로도 한번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꼭 베이스가 위스키일 필요 있나? 연태 하이볼도 있는데. 그러면 이미 하이볼이 아니라 다른 이름의 칵테일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선배 C와 마신 하이볼(들)도 기억에 남는다. 주로 어딘가 밥을 먹으러 가서 메뉴에 하이볼이 있으면 시키는 편이었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것은, 지금은 없어진 문래창작촌의 삼겹살 덮밥집 '삼부리'의 하이볼이다. 일단 매콤한 삼겹살 덮밥이 맛있고, 대낮에 곁들여 마시는 하이볼이 정말 맛있었다. 그때 나는 갓 대학원을 졸업하고 코로나 시기라 물리적으로 여유로운 상태였으므로 그날의 햇볕조차도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기념할 만한 가장 최근의 하이볼은 중국 상공(추정)에서 마신, 대한항공 승무원분이 타주신(이것도 추정) 하이볼이다. 메뉴판에 하이볼이 있길래 설마설마하면서 부탁드렸는데 정말 맛있는 하이볼을 만들어 주셨다. 레몬 슬라이스도 들어 있고, 토닉워터도 아니고, 너무 달지도 않은 하이볼! 최고의 하이볼을 다시 만날지 어떨지 모르는 비행기에서 마주치다니 운이 없다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반전이라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시 부탁드린 하이볼이 조금 달랐다는 것이다. 일단 레몬 슬라이스가 없고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내 기억보다 좀 진한 것 같기도 했다. 밤 비행기였으니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승무원 분께서 '하이볼 더 드릴까요?'하고 주신 것이... 짐빔 하이볼 캔이었다.
그냥 얼음잔에 이걸 따라 주신 거였다고요? 저는 그걸 극찬하면서 맛있게 먹었고요?
나중에 선배 E와 논의해 본 결과 한국에서 출국할 때와 외국에서 귀국할 때 비행기에 싣는 음료나 재료가 다를 테니 갈 때와 올 때 하이볼 맛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 같다. 내가 갔던 국가는 내놓고 술을 팔지는 않는 나라였으니 더 그랬을 수도 있겠다. 빠른 시일 내에 짐빔 하이볼 캔을 다시 한번 사 마셔서 검증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맥주가 1등이다. 하지만 하이볼이 당길 때가 있다. 아마 앞으로도 하이볼은 나에게 2등일 것이다. 3등은 아마 소량의 위스키 혹은 와인이 될 것이고 그 외에는 현재로서는 없다. 어쨌든 맥주가 됐든 하이볼이 됐든 글을 쓰면서 혹은 읽으면서, 코드를 짜면서, 또는 게임을 하면서 마시는 일이 대부분이다. 어제부터 그 대신 차를 마시는 게 어떨까 반성하고 있긴 하지만... 난항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