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단 한 번 날아오르는 순간 10(완)

나는 기억한다, 그 한 순간을

by 장명진
가슴속 어딘가로부터 묘한 미소가 떠올라왔다. 한 번 떠오른 미소는 다음번 미소를 떠밀어 올리고, 또다시 다음번 미소가 공기 방울처럼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장 중위에게 콘탁스 카메라에 대해서 물어볼 생각이었으나 아무래도 좋다고 여겨졌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은 때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종종 사람들은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잘 이해했다. 장 중위도 눈을 감았다. 동이 트려면 아직 30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했다. 나도 눈을 감았다. 저수지의 물길이 내 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득한 물소리…….

“뜬다!”


장 중위의 목소리였다. 선생과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차창 밖에 쇠기러기들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선생과 나는 서둘러 촬영장비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추위가 엄습했다. 장갑도 끼지 않은 채였다.


“어서 찍어!”


선생의 지시에 나는 맨손으로 카메라를 들어 쇠기러기들이 날아오르는 저수지를 조준했다. 연사로 맞춰둔 셔터를 눌렀다. 촤르르륵 소리를 내며 새들이 카메라 속으로 날아들었다. 새벽 어스름의 푸른빛과 눈 덮인 저수지가 뒤섞여 말할 수 없는 청초함을 자아냈다. 손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셔터에서 손을 떼고 싶어도 떼어낼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쇠기러기들은 계속 카메라에 담겼다. 정작 선생은 아직 카메라를 꺼내지도 않았다. 의아했다.


“선생님은 안 찍으세요?!”


내가 소리치자 선생은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선생의 문이 또 닫혔다. 나는 다시 아버지의 등을 떠올렸다. 그때 장 중위가 오른쪽 어깨를 툭툭 쳤다. 장갑이었다. 부드럽게 미소 짓는 장 중위를 보며 나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콱 움켜쥐고 장갑을 받아 양 손에 끼었다. 차 안에 두어서 온기가 돌고 있었다. 따뜻했다. 그러는 사이 쇠기러기들이 절반 이상 날아올랐다. 하늘이 점점 더 하얗게 밝아오고 있었다. 선생은 촬영은 하지 않고 계속 저수지 저 편을 기웃거렸다. 장 중위는 콘탁스G1을 수줍게 꺼내어 들더니 무리에서 뒤쳐져 힘겹게 날아가는 한두 마리의 쇠기러기들을 담았다.


쇠기러기들이 거의 다 날아가고 저수지에 남은 새가 얼마 없을 때였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장 중위도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도 멍하니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선생이었다.


"매일 그대와 아침 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매일 그대와 도란도란 둘이서

매일 그대와 얘기하고파…."


그 노랫소리는 분명히 선생이 선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느낌이었다. 마치 저수지가, 혹은 날아오른 쇠기러기들이, 어쩌면 지구 전체가 부르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리고 그 노래 사이사이에는 분명히 어른의 울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새의 울음이 아닌 사람의 울음이. 나와 장 중위는 선생에게서 시선을 놓지 못했다.


일순간 노랫소리가 멎었다. 선생이 품 속에서 코닥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장갑은 끼지 않았다. 카메라의 뷰파인더와 선생의 눈이 평행선을 이뤘다.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 평행선상의 대상에게로 이동했다. 숨죽였다. 무리에서 홀로 떨어져 나온 새하얀 두루미 한 마리가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동시에 몸을 떨었다. 한 폭의 신선화 같은 절경이었다. 거대한 저수지 가운데 홀로 선 순백의 두루미 한 마리. 두루미는 거대한 저수지의 일부로 동화되지 않았다. 단 한 마리의 두루미가 오히려 저수지를 비롯한 그 순간의 설경 전체를 압도하고 있었다. 멀리서도 카메라를 움켜쥔 선생의 몸이 크게 요동치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선생은 떨고 있었다.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눈처럼 고요해졌다. 허공의 푸른빛이 거의 걷혔다. 얼어붙은 저수지로부터 투명한 안개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햇살이 점점 강해지는가 하더니… 두루미가 날개를 활짝 폈다. 우아하고 힘차게 날갯짓을 하더니 탁! 하고 날아올랐다.


찰칵!


단 한 번의 셔터 소리가 두루미의 뒤를 따르듯 아득히 울려 퍼졌다.






- 끝 -


* 표지사진 = 이환곤(이환곤의 새야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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