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서 <비브르 사 비>
한 손에 들어오는 너비와 노트처럼 가벼운 무게를 가진 책. 비브르 사 비(vivre sa vie)라는 이국적인 제목과 함께 바다를 향해 열린 조그만 창이 달려 있다. 마치 내게 그 직사각형만큼의 바다를 선물하는 느낌이다.
2013년의 크리스마스이브 즈음이었다. 영풍문고의 책 더미들 속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그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감탄했었다. 저자는 영화배우 윤진서 씨였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았다. 책과 참 어울렸다. 한참이나 책을 이리저리 펼쳐보다가 이미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의 목록이 떠올라 제 자리에 두고 서점을 떠나왔었다.
새해를 맞이하여 동네 서점인 땡스북스에 들렀다.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비브르 사 비>를 만났다. 창 너머의 흑백 바다가 조금 서운한 빛으로 나를 향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펼쳐 들고 정재은 감독의 서문을 읽어내려갔다. 어딘가 믿음이 가는 글이었다. 이어서 윤진서 씨가 쓴 프롤로그를 따라 읽었다. 두 글 모두 여름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흑백의 멈춰진 여름 바다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vivre sa vie는 프랑스어다. 직역하면 '그녀의 삶을 살다'라고 할 수도 있겠고, 숙어로는 '삶을 즐기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책 속에도 소개되고 있지만 장 뤽 고다르라고 하는 프랑스 누벨바그 사조의 대표적 감독의 동명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이후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이라는 영화 사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 '누벨바그 영화'의 특징을 쉽게 말하자면, 날 것 그대로를 담아내는 것에 충실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정해진 대본과 스튜디오, 카메라 워킹 등에서 탈피해 배우가 해석한 작중 인물의 즉흥적인 감정과 실제 거리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당대의 풍경들을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 삼각대 등을 사용하지 않고 찍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의도된 아마추어리즘이다. 굳이 여기서 누벨바그의 특징 따위를 상세히 펼쳐놓은 이유가 있다. 뭐랄까, 내가 읽은 이 산문집 그 자체가 바로 누벨바그였기 때문이다.
배우 윤진서는 영화 <버스정류장>으로 데뷔를 했다. <버스정류장>이 개봉했을 무렵 영화관에 가서 관객 3명과 함께 그 영화를 보았던 나지만 미안하게도 그 영화에 나온 그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겠지만 <올드보이>를 통해 그를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 <올드보이>로 그를 알았지만 오래 기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허진호 감독의 <나의 새 남자친구>를 통해 본 그는 아주 오래 인상에 남았다. 배우 윤진서는 어쩐지 이제 막 동이 트려는 새벽의 바다를 닮았다. 뜨거운 것과 서늘한 것이 공존하는 눈빛을 지녀서 멋지다고 생각했다. 팬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가 새로운 영화를 발표할 때마다 어떤 영화일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산문집 <비브르 사 비>에는 내가 처음 느꼈던 그의 인상이 크게 틀리지 않게 담겨 있어 반가웠다. 화보집이 아니라 산문집인 것도 좋았다. 그의 문장은 오래 곱씹어 본 사람의 문장이었다. 그 자신이 인생에서 겪은 여러 이야기들을 담고 있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점점이 펼쳐져 있지만 그것들이 모두 하나의 마침표를 향해 모이고 있어 번잡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치, 앞 선 생각들이 마지막 챕터에 소개되는 아유르베다 속으로 합장을 하고 모여드는 것 같은 구성이다.
그는 여름의 바다를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겨울의 바다를 좋아한다. 그는 외로운 사람들이 좋다고 한다. 나도 외로운 사람들이 좋다. 사람과 사람은 그처럼 몇 가지의 공통점과 몇 가지의 차이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해간다. 바다는 어제의 바다이든, 오늘의 바다이든, 혹은 제주도의 바다이든, 와이키키 해변의 바다이든 마찬가지의 바다로 보인다. 하지만 바다를 사랑하고 깊게 들여다보면 바다가 단 한 번도 같지 않음을, 제주도의 바다와 와이키키 해변의 바다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바다를 들여다보는 일도 같은 일이 아닐까. 아, 저 사람의 바다는 나와 참 비슷해하고 다가갔지만 전혀 다른 바다일 수 있고, 저 사람의 바다는 상종을 못하겠어!라고 단정 짓지만 막상 그 바다에 서보면 낯익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바다를 들여다보는 일에는 그래서 반드시 '기다림'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바다를 들여다보는 일에는 그래서 반드시 '기다림'이 필요하다.
'삶을 즐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삶을 결코 즐겁지 않다. 괴로운 일들, 슬픔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결국 삶은 즐거운 일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삶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간순간을 급하게 쫓아가기보다 조금은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오래오래 마음을 다해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에는 삶이, 어떤 결정적 기회가, 빛나는 순간들이 우리를 돌아보지 않을까. 좋은 동지를 찾은 기분으로 배우 윤진서 씨가 그 바람처럼 '그냥 배우'가 되는 날들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