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 이 글의 작성 시점은 2013년의 봄입니다.
크라잉 넛 멤버들이 함께 썼다는 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 싶어졌다. 그들에게 책의 제목을 빚졌다는 유시민 전 의원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은 후부터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으니 이제 차츰 '전 의원'이나 '전 대표'라는 호칭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스러져 갈지도 모르겠다.
그가 노무현 대통령 후보 흔들기를 하던 후단협에 분노해 개혁당을 창당한 것도 벌써 10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은 정치적으로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유인 유시민은 정치인 유시민이 되어 그 시간의 소용돌이 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벗어나 진보정당 '정의당'의 평당원으로서 다시 자유인으로 돌아와 있다.
한때 야당 대통령 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지니기도 했던 그였기에 정계은퇴 후 나온 첫 책에 대해서도 많은 언론들은 그가 책에 언급한 '정치적 발언'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책 소개를 대신했다. 정작 책에서 그가 현실 정치에 대해 본격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은 지구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역사가 차지하는 분량만큼이나 적다.
유시민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책의 원래 제목을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하려고 했다고 적어두었다. 소설 <이방인>으로 유명한 까뮈의 말이 소개된다.
당신은 왜 자살하지 않는가?
'당신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뒤집어 놓았을 뿐인데도 훨씬 도발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으로 변한다. 당신은 왜 사는가 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뭐 살아 있으니까 살지 라며 쉽게 답을 회피하곤 한다. 그러나 당신은 왜 자살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나는 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서양철학사' 수업에서 고등과정의 아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아이들은 당혹했고, 역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요즈음 업무에 매진하다 보니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는데 한 달 정도가 걸려버렸다. 내 트위터 계정을 팔로잉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다 느끼셨겠지만 한 달 내내 이 책에 푹 빠져서 살았다. 당신은 왜 자살하지 않는가 라는 까뮈의 질문은 내 삶의 중심으로 갑자기 날아와 꽂힌 화살 같았다. 피할 수 없어서 매일 매일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래, 나는 왜 자살하지 않지? 왜 자살하지 않지?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 - 56p
유시민 씨는 까뮈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있다.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의 마지막 가사가 떠오른다.
"멋지지 않아?(Isn't it good?)"
이 대목에서 세차게 가슴이 뛰었다. 무언가 다시 시작해봐야겠다고 막연하게 다짐했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자.'고 그는 책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권하고 있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자.'
나는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가급적이면 일하기보다 노는 것이 좋고, 인간은 근원적으로 충분히 놀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여기는 편이다. 놀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일은 인간의 영성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내게는 한국사회보다 유럽 사회가 훨씬 이상적인 세계에 가깝다.
나는 사랑하는 것이 좋다. 가급적이면 언제나 누구에게나 혹은 무엇에게나 사랑에 빠져 있기를 원한다. 열정을 가지고 있기를, 이성은 차갑되 가슴은 늘 체온보다 뜨겁기를 바란다.
나는 내 삶이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삶의 축복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내가 가진 것이 보다 많다면 되도록 더 갖지 못한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이런 면에서 나와 유시민 씨의 생각은 상당히 일치한다. 정치인으로서의 성패 여부를 떠나 인간적으로 그에게 매력과 호감을 느끼는 이유다.
내가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딱 다음의 두 일을 할 때인 것 같다. 글을 쓸 때와 노래를 부를 때이다. 그렇다면 나는 좀 더 많은 시간을 이쪽에 할애하여 보다 빨리 작가가 되거나 슈퍼스타K 시즌 5에 참가해 가수를 노려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나의 공식적인 직업은 대안학교 중등과정 국어교사이자 고등과정 철학교사다. 정말로 행복을 느끼는 일은 이 공식적인 직업의 역할에 충실하느라 요즘 거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동안 이 때문에 극심한 고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진정 행복을 주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 지금은 '사랑'도 휴지기이고 - 그럼 나는 자살해야 할까?
아니다. 대안학교 교사가 되는 일 역시 내가 선택한 일임에 틀림없다. 여러 가지 다른 이유도 함께 있지만 내가 대안학교 교사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상과의 연대 때문이었다. 유시민 씨가 일부분 세상의 요청에 응해서 정치인이 된 것처럼, - 그만한 세상의 요청은 물론 없었으나 - 나 역시 교육자가 되었다. 보수는 적고, 일은 많아서 아마도 취업을 알아보고 있는 이들에게는 전혀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겠으나 우리 사회에서 잘못되어 있다고 여기는 한 부분을 뿌리에서부터 확인하고 변화를 모색해보고자 이 길에 들어와 있다. 그렇기에 비록 내가 온전히 행복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직 나는 자살할 이유가 충분하지는 않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분명히 저마다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평가하기를 자신은 '루저'라고 꿈을 이루지 못한 패배자라고 크고 작은 자기비하를 하며 지낸다. 어떤 이는 그런 사람들에게 더 노력하라고, 당신은 그렇게 된 것은 더 노력하지 않거나, 더 원대한 꿈-목표를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다그친다. 어떤 사람은 괜찮다고 괜찮다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위로하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분명히 저마다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는 불교를 공부한 사람이라 그런지 내게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에 대해 대체로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는 편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그 일이 그만큼 나에게, 혹은 세상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궁극적인 의미를, 이 일이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그리고 세상에게로, 온 우주에게로 퍼져나가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곰곰이 탐구해보면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선이 반드시 악을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바라는 것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와 당신, 그리고 이 세상이 서로 조금씩 틀어지더라도 다시 회복이 되고, 제자리를 찾게 되고, 그런 균형을 이루어 갔으면 하고 바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정신보다 물질이, 본질보다 현상이, 삶의 가치보다 화폐의 가치가 더 우세한 세상이 아닌가 싶다. 그런 세상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나는 그 반대의 쪽에 서야 한다고 내 나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틈날 때마다 '직업'을 삶의 목표로 두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행한 일이라는 말을 한다. 우리가 '직업'을 가지는 나이는 대개 20~30대 사이. 인간의 평균 연령은 이제 80세. 그렇다면 우리는 30대에 목표를 실현하고 그 이후 50년 간의 삶은 아무런 목표도 없이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이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로 귀결되어선 곤란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나라의 많은 진로 지도라는 것이 '직업'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공무원(안정적 직업의 상징으로서)이 되기 위해서요."라고 답하는 청소년을 마주하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너도 나도 어른들이 청소년을 힐링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청소년의 멘토가 되어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때로는 어르고, 때로는 다그치고, 때로는 호통을 치고 있다.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중 어느 것도 아니다. 물음표를 던져오는 청년들에게 도리어 더 큰 물음표를 내민다. 취직을 어떻게 하냐고... 그런데 넌 어떻게 살아볼 생각인데? <어떻게 살 것인가>는 답이 없는 책이다. 그저 한 사람의 인생이 조용히 담겨 있고, 침착한 질문이 놓여 있다.
여러분, 도대체 어떻게 사실 겁니까?
진보와 보수, 빈자와 부자, 패자와 승자, 우리들을 가르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넘어서 우리 각자가 이 질문에 저마다의 답을 명확히 내리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정치적인 변화도 혁명도 우리의 삶을 본질적으로 바꿀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