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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Sep 11. 2016

사라졌지만 잊혀지지 않은

<홍대 1인 생활자> 에피소드 3

Episode 3. 사라졌지만 잊혀지지 않은



#1 사라진 라이브클럽


내가 처음 홍대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음악 때문이었다. 델리스파이스, 언니네이발관, 네스티요나, 보드카레인, 브로콜리너마저, 오지은,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요조, 타루 등 내가 사랑했던 음악가들의 활동 무대가 바로 홍대였다. 그들을 실제로 만나기 위해서는 홍대에 와야 했고, 덕분에 나는 대학 새내기이던 시절부터 종종 홍대를 찾았다. 내가 다니던 라이브 클럽은 와우교 옆의 산울림 소극장을 랜드마크로 삼고 분포된 빵, 쌈지스페이스 바람(이후 라이브클럽 쌤), 쌀롱 바다비 등의 라이브 클럽이었다.


쌈지 라이브클럽 샘에서 공연 중인 '오지은과 늑대들'


지금은 자리에서 사라진 두리반 철거 반대 투쟁 음악회에 동참했던 '브로콜리너마저'


2016년 현재, 자주 드나들던 세 개의 라이브클럽 중 두 곳이 문을 닫았다. 쌈지 라이브클럽 쌤과 쌀롱 바다비다. 빵의 안위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인디 음악의 성지라고 불렸던 홍대는 이제 한류 관광의 중심지로 명함을 새로 팠고, 춤과 술을 즐기는 클럽과 의류 및 음식을 판매하는 메인 스트림을 중심으로 재편된 홍대 문화는 라이브클럽까지 이르는 사람들의 심리적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2 사라진 까페


변화는 다른 곳에서도 감지된다.


다양한 특색과 테마가 있는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홍대의 거리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의 거대 자본이 들어서면서 화려하고 이국적인 건물들과 어딘가에서 마주쳤을 법한 가게들이 속속 자리를 바꾸어 차지하고 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까페 한 곳도 그 흐름 속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까페의 이름은 까페 프로젝트 A였다.


파란색 벽에 하얀 페인트붓이 그려진 가게가 바로 까페 프로젝트 A


까페 프로젝트 A는 원래 노란색으로 칠해진 벽면의 '까페 프로젝트 B'였는데, 어느 날 A로 옷을 갈아입었다. B일 때는 들어가 보지 않았던 까페를 처음 들어섰던 게 아마 2009년 가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GOP의 장교로 일하고 있던 때였다. 그때 내 계급은 장교 중 막내인 '소위'였고, 콩쥐팥쥐전의 콩쥐만큼이나 서러움을 겪고 있을 무렵이었다.


좁다란 계단을 따라서 까페 프로젝트 A의 투명한 유리문을 밀던 때가 아직도 선연히 떠오른다. 온통 하얀색의 페인트로 칠해진 공간 속에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테이블과 의자, 소파가 있었고, 하얀 벽면에는 전람회를 여는 화랑처럼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대체로 팝아트 경향의 그림들이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나는 이동기 화가의 '아토마우스'라는 작품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훗날 나는 이 작품을 아주 좋아하게 되어 관련 전시가 열릴 때마다 찾아가서 보곤 했다.)


이동기 화가의 '아토마우스'. 훗날 이 연작 시리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 델리스파이스의 음반 자켓 이미지로도 사용되었으니, 인연의 신비함이란...


흘러나오는 음악 또한 내 마음에 아주 쏙 드는 것들이었다. 내가 유리문을 밀었을 때 들려왔던 곡은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국적이고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내가 사랑하는 인디 음악가들의 음악이 주로 흘러나왔다. 못의 '날개'를 처음 들은 곳도 A에서였다. 나는 군에서 휴가를 받을 때마다 고향집에 들르듯 A까페를 찾았고, 이곳에서 세 편의 단편 소설과 다섯 편의 시, 세 통의 연애편지를 썼다. 그리고 세 통의 연애편지는 한 통도 상대에게 보내지지 않았다.



#3 사라진 소품 가게


까페 프로젝트 A로 가는 길목에는 또 내가 사랑했던 디자인 소품 가게가 있었다. - 이 가게를 디자인 소품 가게라고 칭해야 할지, 그림 파는 가게라고 해야 할지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 그 가게의 이름은 크리에이티브 da였다. 이어서 읽으면 재미있는 이름이 되지만 나는 그 재미를 가게가 사라진 후에야 알게 되었다. 가게의 이름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잘 외워지지 않아 나는 내 마음대로 그 가게의 이름을 새로 지어서 불렀다. 내가 붙인 그곳의 이름은 빨간 펭귄 가게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 이 가게의 별명이 왜 빨간 펭귄 가게가 되었는지 :  )


빨간 펭귄 가게는 영국의 대표적 출판사인 펭귄북스의 책들은 전시해 놓고, 팝아트 작품들을 실크프린팅 해서 저렴하게(? 어디까지나 실물 그림에 비하여) 파는 곳이었다. 펭귄북스의 펭귄 로고와 북디자인에 대한 맹목적 추종세력이었던 나는 마치 이슬람 신지가 이태워의 사원을 방문하는 기분으로 빨간 펭귄 가게를 방문했다. 홍대를 찾았던 날 중에 이 성지를 들르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친구와 약속을 정한 때에도 1시간 일찍 먼저 도착해 이곳을 들렀다가 친구를 만날 정도였다.


지금은 교보문고에서도 펭귄 책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처음 이곳을 들를 때만 해도 실물 펭귄 책은 진귀한 것이었다


저 벽면에 걸려있는 무늬 액자 시리즈 중의 하나가 내 주방에 3년 정도 걸려 있다가 친구의 집으로 이주했다


빨간 펭귄 가게에서 아름다운 펭귄북스의 책들을 탐닉하고 나오면 무언가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뭔가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곤 했다. 안타깝게도 그 에너지가 집에 오면 배고플 때 먹는 떡볶이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이제야 정확히 말할 수 있게 된 크리에이티브 da도 이제는 홍대에 없다.



#4 사라졌지만 잊혀지지 않은


나를 홍대로 이끌었던, 홍대로 이사를 해야지 하고 다짐하게 만들었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하나 둘 사라지고 없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이곳 홍대에 남아 있다. 이유는 하나다. 사라졌지만 아직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쌀롱 바다비가 있었던 와우교 인근을 지날 때면 바다비가 있던 자리를 보며 과거로 타임슬립을 한다. 그리고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고, 객석에 앉아 풋풋했던 음악가들의 첫 음악을 다시 듣게 된다.


옛 자취조차 찾기 힘들어진 까페 프로젝트 A의 자리를 지날 때도 내 귓가에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이 들려오고, 한 여름에도 서늘한 가을바람을 느낀다. 그때 보내지 못했던 세 통의 연애편지를 떠올린다. 내가 무슨 말을 썼는지, 그 상대가 누구였는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때를 떠올리면 잠시 웃게 된다. 인생을 조금 좋아하게 된다.


책장에 있는 펭귄북스의 책들을 꺼내 읽을 때면 빨간 펭귄 가게의 공기를 떠올린다. 빨간 펭귄 가게에서 내게 온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아주 잠시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 사라진 것들은 오히려 사라졌기에 시간여행의 매개체가 되어준다. 기꺼이 이상한 나라로 인도하는 시계토끼가 되어준다.


그렇게 청춘의 기회들, 들뜬 마음들, 추억의 장소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지만 아직 잊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소중하다.


홍대의 밤, 어느 곳의 불빛
이유는 하나다. 사라졌지만 아직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6. 9. 11. 멀고느린구름.


* 사진 = PEN E-p1 / contax G 45mm /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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