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헌터
날씨는 더럽게 추웠다. 세평 남짓한 초라한 사무실. 난로를 켠다. 초저녁이라 불을 켜 놓지 않은 사무실이 주홍빛으로 물든다. 창 밖의 눈송이들도 녹아 들 듯 열기가 번졌다. 목격자라는 놈들의 말은 각기 제각각이었다.
우선 첫 번째 목격지는 비탈길 나무 아래. 그리고 거의 같은 시각에 신애와 요섭의 집(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버스정류장 네 개 정도 거리에 있는 개천(하수구가 연결되어 있다. 며칠간 계속 그 부근에 모습을 보였다) 그 다음 네 달 즈음 지나 며칠 전 갑자기 엉뚱하게 161번 버스 뒷좌석에 누워 있는 것이다. 제보는 거기서 끝이다.
나는 어떻게 고리를 맞춰야 할지 몰랐다. 집 나간 지 육개월이 넘어간 얼치기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이다. 냉장고에 손을 뻗어 맥주 캔 하나를 끄집어 낸다. 창 밖에는 여전히 눈송이가 힘겹게 도시의 잿빛을 지우고 있었다. 문득 과거 언젠가 이렇게 창 밖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던 날이 떠오른다. 지금은 고액의 위자료를 챙겨 떠난 아내와 함께 말이다. 사랑은 아주 웃기는 일이다. 유통기간이 지나면 썩어버리는 빵이나 우유처럼. 세월이 흐르고 뇌에서의 화학작용이 시들해지면 쓰레기통으로 던지는 것이다. 쓸만한 것만 멋지게 재활용하고.
술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다. 답답해.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 뭉치들과 고지서 더미들에 눈이 간다. 삶을 짓눌러 오는 종이 조각들. 세월은 종이조각을 채우고 버리는 일로 이루어진다. 흘러간다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느 틈에 돌아보면 저만치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쳇, 300만 원이나 벌어야지. 나는 늘 그러하듯 퍼즐을 짜 맞추며 추리를 전개해본다.
우선 4절 도화지로 네모난 조각을 여러 개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이것저것 모은 단서들을 써보는 것이다. 다음은 각 단서들을 연관 있는 것 끼리 짜 맞추어 본다. 정말 퍼즐 조각을 맞추 듯이. 내가 이렇게 헌터 일을 하는 것은 돈 때문도 있지만. 지금처럼 이러한 퍼즐놀이가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파편화 된 조각조각의 삶들. 꼭 신이라도 된 양 그것을 지금 여기서 한가히 짜 맞추고 있는 것이다.
퍼즐을 다 짜 맞추고 보니 그림이 하나 떠오른다. 요섭의 이동경로를 생각해보자. 요섭이 집을 나가던 날 분명 집에서는 무언가 요섭에게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요섭은 그 일로 인해 신애가 집을 나간 사이 밖으로 나왔고 비탈길 나무 아래까지 갔다가 무언가 일을 하고, 집으로 왔다가 다시 또 어떤 일을 겪고, 집을 나선다. 한 참을 걸어 개천까지 다다라 하수구에서 무언가 또 일을 벌이는 것이다. 아마 짐작컨대 요섭은 그 하수구 속에서 잠을 자거나 했을 것이다. 흔히 꼬맹이들이 그런 짓을 종종 저지르듯. 그 후에는 분명 신애에게 돌아오기 위해 애를 쓰다가 우연히 버스를 탄 것일 게다. 일단 하수구 쪽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의 그 우스운 중절모와 바바리를 걸치고 사무실을 나선다.
제법 넓은 개천이 먼 소실점을 향해 뻗어 있다. 물은 꼭 수돗물 마냥 쪼로록 흐르고 있다. 악취가 난다. 잿빛 하늘을 두세 번 씻은 물 같다. 개천을 따라 양쪽에 섰는 회색 방 둑. 페인트 칠 하나하지 않은 건물들. 지짐지짐 내리는 진눈깨비에서 회색 빛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나는 옆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개천 바닥으로 내려간다. 악취가 점점 더 심해진다. 주변을 살피다가 하수구관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잿빛 냄새. 세상을 갑갑하게 둘러싸고 있는 흑백영화 같은 빛깔들이 목을 졸라 오는 것 같다. 현기증이 잠시 일었다.
“사랑 따위가 아직 있다 생각하는 거야?”
툭 튀어 오르는 아내의 목소리. 아니... 중얼거리며, 바닥 쪽으로 시선을 옮겨 본다. 지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하수구관 바로 앞쪽에 올록볼록한 흙덩이 네 개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모래성 같다. 허나 가까이서 보니 나무 막대기로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 놓았다. 나의 추측으로 그것은 신애가 말했던 간이 무덤이 틀림없다. 예상과는 달리 무덤의 수가 많지만 요섭은 분명 이곳에서 저 혼자 제사를 지내고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길을 잃어버렸고. 교통편도 이용하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친 것이다. 또 밤은 점점 깊어 가니 무서워서 그냥 그 자리에 눌러 앉아 버린 것일 게다. 발로 그 무덤을 툭툭 차 본다. 얼치기의 경건함 따위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흙 알갱이 새로 회색 빛 동물의 가죽이 보인다. 쥐.
신애의 집 앞, 비탈길 나무 아래에서도 역시 그런 무덤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쥐가 발견되었다. 나는 뭔가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았다. 사무실로 돌아와 신애의 집으로 전화를 건다. 열다섯 번째다. 삐이하는 전자음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삑삑삑삑하는 신경질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젠장, 내가 더 짜증 나. 그녀는 벌써 열 시간 째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어디로 간 것일까. 실마리가 잡히면 곧장 전화해달라고 눈물콧물 다 짤 때는 언제고. 약속했던 일주일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직접 찾아가볼 수밖에. 창 밖의 하늘이 모처럼 푸르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