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잃어버린 사랑을 찾습니다 6

2. 나는 헌터

by 장명진

비탈길을 올라 신애의 집으로 향한다. 그 집 주인으로 뵈는 노파가 대문 한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다.


“이신애 씨 집에 계신가요?”

“뭐 할라꼬?”

“아 네, 박요섭 씨 일로 왔는데요”

“아 자네가 그 탐정 뭐시긴진가?”

“뭐 일단은... 근데 이신애 씨는?”

“아따 고 년이야. 지 남편 죽어서 신났제.”

“네? 그게 무슨..”

“요새 통 안 보이잖어. 아 고 년이 맨 날 지 남편 바보뱅시라고 집에 가둬놓고, 복지금이나 타 쓰구 그러잖어.”


노파의 얼굴이 추하게 일그러진다. 노파의 입가에 침이 고인다. 그러더니 곧 카악하고 가래를 바닥에 툭 내뱉는 것이다.


“아 결혼허구 한 1년 지나니께 지 남편 뱅신이라고 매 구박하고 안 글나. 내 언제 이런 일 일날 줄 알았제. 1년 즌이야 좋았제. 우째 세상에 그래 변하누 쯧쯧.”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남편을 싫어했다는 여자가 뭣하러 300만 원이나 사례금을 걸고 남편을 찾는다는 말인가? 뒤에서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려온다. 하이힐 소리 같다. 이신애가 비탈길 편에서 찬찬히 모습을 보인다. 까맣고 긴 생머리가, 하얗고 청순해 뵈는 얼굴이, 가느다란 목이, 그 목의 반짝이는 목걸이가, 까만 원피스가 차가운 굽 소리를 내는 빨간 하이힐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녀는 나를 보고 놀라는 기색을 언뜻 보이더니, 이내 침착한 표정으로 바꾸고 다가와서는 집으로 들어가 얘기하자고 한다.


“저 할머님하고는 무슨 얘기 하고 계셨어요?”

“아니 뭐 별 얘기는..”

“무슨 말 들으셨는진 모르겠지만요. 믿진 마세요. 저 할머님 치매 걸리셨어요”

“네? 정말요?”

“예. 요즘 누가 장애인 딸린 식구한테 방을 내주겠어요. 서로 딱한 처지니까 할아버님이 안쓰러운 맘에 방을 주셨던 거죠.”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는 기색이 전혀 없다. 마치 늘 하던 얘기를 하듯 표정도 덤덤하고, 진실처럼 들린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요?”

“아… 고아원에 잠깐 일이 있어서요”

“근데 무슨 일로…?”

“네에, 박요 섭씨가 집을 나가게 된 동기를 알아냈습니다.”

“아, 그래요? 아니 정말이요?!!”


여자는 예의 그 호들갑을 또 시작하는 것이다. 눈빛이 아주 초롱초롱이다. 그런데 그 눈빛이 왠지 독을 품은 뱀의 눈빛처럼 뵈는 것은 좀 전의 노파의 말 때문일까. 그녀에게 박요섭이 집을 나간 동기에 대한 나의 추리를 이야기했다. 신애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요섭이 하수구까지 가게 된 경위는 확연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의 행방은? 버스를 이용할 줄 모르는 이가 처음 버스를 탔다면…종점에서 내리게 될 게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신애의 방을 나선다. 그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는데 어쩐지 방의 물건들이 줄어든 것 같다. 집 밖 한 켠에는 노란색 마티즈 차도 보인다. 하늘에 먹구름이 조금씩 끼고 있다.


사무실로 돌아와 소파에 눕는다. 누군가 정수리에다 주사바늘을 꽂고 피를 죄다 뽑아내는 것 같다. 하품이 나고 눈가에 물기가 어리더니 잠이 쏟아진다.


신애는 요섭이 쓴 원고 뭉치를 가지고 출판사로 향하고 있다. 주위 풍경은 갓 현상된 필름 음화 같다. 신애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출판사 건물만이 빛깔을 가지고 있다. 신애가 건물에 들어서자 빨간 하이힐이 요란스레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신애는 층계를 얼마쯤 올라가더니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삐이걱하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고 들리지 않은 것도 같다. 또각거리는 굽소리는 심장박동처럼 쉼 없이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소리가 끊기면 무언가 숨이 끊길 것 같다. 신애가 들어선 방에는 두세 사람 정도가 서류 뭉치들이 너즈러져 있는 탁자 곁에 앉아 있다. 신애는 그중 누구에겐가로 가서는 요섭의 원고를 건네주고 돈뭉치를 건네어 받는다. 탁자 곁의 사람은 입도 벙긋하지 않은 채 나머지는 은행구좌로 넣었어요 라고 말한다. 신애가 씽긋 웃는다. 돌아선다.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또각 또각 또각 똑. 소리가 멎는다. 신애와 건물이 사라진다. 그리고 내가 나타나고, 내 발 아래쪽에는 온몸이 하얗게 질린 벌거벗은 한 사내가 엎디어져 있다. 몸을 숙여 살며시 남자의 머리를 내편으로 돌려본다. 살점만이 너덜너덜하게 골격에 붙어 있다. 뭉개어진 얼굴은 도시 누군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왠지 나는 그것이 요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또각거리는 소리. 또각 또각 똑. 뒤를 돌아본다. 신애가 붉은 하이힐을 거꾸로 쥐어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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