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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Oct 04. 2016

성폭력 예방 교육은 여자아이에게만? 1

페미니즘 교육 2


성폭력 예방 교육이라는 것이 대체로 '여자아이'의 신체 단속, 복장 단속, 행동거지 단속 등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째서 남자아이는 몸 가짐을 주의하지 않아도 되고 여자아이는 매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말일까. 


많은 학교에서 '성교육'이라는 것을 행하고 있다. 여성민우회 등 바람직한 젠더관(성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에서 함께 바라보려는 의식. 즉, 남성의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남성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며,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여성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융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무의식에 깃든 남성적 요소를 아니무스,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라고 표현한다.)을 지닌 단체에서 많이 결합하면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으나 여전히 공교육 내에서 행해지는 성교육은 성폭력 '예방'교육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몇몇 대안학교에서도 어쩌면 비슷한 사정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문제는 깊어진다. 이 성폭력 예방 교육이라는 것이 대체로 '여자아이'의 신체 단속, 복장 단속, 행동거지 단속 등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째서 남자아이는 몸 가짐을 주의하지 않아도 되고 여자아이는 매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말일까. 아무래도 사회가 그러니까라는 항변이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미래 사회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라고 가정을 해야 한단 말일까. 미래에도 우리의 딸들은, 여성들은 몸가짐을 조심하며 혹시나 자신의 몸이나 행동이 남성을 유혹하여 성폭력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일까.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아래 기사는 그런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아이가 성폭력을 저지를까 걱정해본 적 있어요?’ (일다)

*제목을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아들을 둔 부모로서 성폭력 예방 교육과 관련한 문제를 고민해본 글이다. 여러 통계 자료들에 따르면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의 99%는 남성이고, 피해자의 약 98%는 여성이라고 한다.  



이런 통계를 보면 피해를 입는 2%의 남성 중 절반은 동성인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마. 남을 함부로 때리지 마. 하지만 여성을 강간하지 마 라고는 가르치지 않는다. 왜?


자, 이러한 현실을 대하고서도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는 '성폭력 예방 교육'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없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여전히 암담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5년간 여자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언론에서 계속 이슈화하면서 관련 정책이나 법안이 강화되는 듯 제스처를 취하고, 사회적으로도 화제가 되었었다. 그런데 위 2012년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전체 성폭력에서 아동 성폭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미미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아동 성폭력 문제가 그렇게 월등히 심각한 나라는 아닌 것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심각한 사건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이 관련 종사자들의 중론이다. 물론, 발생할 경우 그 피해가 막심하기에 예방에 철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정부 5년간 행해진 아동 성폭력 이슈화 및 예방 노력에 자체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진단과 방향성이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이 보이는 반응은 20세기의 반응과 21세기의 반응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런 정도다. 


20세기 : 여성의 과도한 노출이 성폭력을 불러일으켜!

21세기 : 여성의 과도한 노출이 성폭력을 불러일으키나? 


물음표 하나가 붙은 정도의 발전이라니, 이것도 우리 사정에서는 놀라운 발전이라고 자족해야 할까.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는 요즘의 조어가 여기에 딱 어울리겠다. 


이 정도가 되면 삼국유사에 실려야 할 '신화'의 수준이다. 하필 대한민국의 여성만이 굉장히 유혹적이고, 성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유전인자를 다들 몸속에 지니고 태어나는 것일까. 사회적으로 '성폭력'이 논의되는 방식이 이 정도 수준이고 보니, 학교에서 여자아이에게 행해지는 성폭력 예방 교육의 수준도 딱 그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부모들은 여자 아이들의 옷차림을 단속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싫어요!', '안돼요!'라는 말을 반복해서 예행연습시킨다. 


싫어요! 안 돼요! 라고 하면 왕따가 해결됩니까? 하지만 왜 성폭력 문제에서는 이 농담에 가까운 처방이 아직도 유효한가요?


이상한 일이다. 산불 예방을 위해서 산에 있는 나무를 다 깎아버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나? 방화범이 오더라도 산불을 낼 수 없게 말이다. 산불 예방이라 함은 응당 방화범이 방화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방화범의 심층 심리를 이해해서 방화를 일으키고 싶은 충동을 미연에 방지하는 수준까지 노력해야 하나. 아니다. 그건 당연히 방화범의 몫이다. 방화를 저지르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이 지 몫이지 산의 몫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성폭력에서는 이상한 논리가 작동한다. 피해자들에게 가해자의 욕구를 감소시키도록 노력하라고 하는 것이다. 부자에게 도둑맞지 않도록 가난해지라고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인가. 


성폭력 가해자의 99%를 차지하는 남성들은 다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아래 통계를 보자.



성폭력 가해자 남성의 85%가 아는 사람이다. 무슨 말이냐면, 그냥 여러분 주위에 평범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보통의 남성이라는 것이다. 이 보통의 남성들이 모두 '자신의 성욕구 조차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미숙아'라고 여성들이 가정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이 사회는 적어도 여성들에게는 지옥이 아닌가. 최소한 아프리카 사바나에 맨 몸으로 던져진 것과 같은 형국 아닌가. 우리는 문명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지 원시 부족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최소한 제발 여성의 옷차림이 남성의 성욕을 자극 운운하는 기사나 분석 보도 따위는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으면 싶다. 


옷차림이 문제라면 이 여성은 남성의 성폭력 표적이 될까? 아니다. 성폭력은 철저하게 권력과 힘의 문제다.


자, 그럼 원래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성폭력 예방 교육은 여자 아이에게만? 틀렸다. 지금 미래 사회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시행되어야 할 것은 미래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남자아이들에 대한 성교육이다. 99%의 가해자가 장차 가해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야 말로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그러나 현재 대다수의 언론과 학교, 부모, 또래 집단 등등이 힘을 모아 여자 아이의 신체와 행동을 단속함으로써 남자아이들에게 마치 이 성폭력 문제의 근원에 여성이 있는 것 같은 오해를 뿌리 깊게 심어주고 있다. 이 뿌리를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 


지금 미래 사회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시행되어야 할 것은 미래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남자아이들에 대한 성교육이다.


* 다음 화에서는 현장에서의 제 성교육 경험 등을 바탕으로 어떻게 남자아이들에게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면 좋을지 글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15. 4. 25.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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