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교육 4
이제 '성폭력'의 문제 중 '성'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2화에서는 '폭력'의 문제에 포커스를 맞춰보았었다. '폭력'에 시선을 모았을 때 성폭력은 '권력의 우위를 이용한 신체적, 정신적 공격 행위'가 된다고 정리를 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성폭력에는 '성'이라고 하는 생물학적 문제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에 대한 논쟁을 이어가다보면 의외로 많은 남성들이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꼴리게 되어 있어서 성욕을 주체할 수가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일명 남성성욕억제불가론이다. 문명사회는 원시사회와 달리 응당 동물적인 본능을 서로 제어하고 살아가기로 합의한 사회체계이다. 이를 포기한 사람은 문명인이 아닌 야만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스스로 야만인으로 자처하고 나서는 이 몇몇 남성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조금 너그럽게 생각해보자. (일단 나도 남자사람이니까 말이다.) 우선, 그들의 주장에 일말의 타당성이 있는지 검토해볼 필요는 있겠다. 즉, 남성들은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성욕을 지녔다는 주장. 이 주장의 생리학적 근거가 되는 것은 '테스토스테론'이라고 불리는 남성 호르몬이다. 이 테스토스테론 양이 증가할 수록 비례해서 성욕이 증가한다는 것은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로 보인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5배의 테스토스테론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것만 단순히 놓고 보면 남성이 여성에 비해 5배 강한 성욕을 지니고 있다는 말도 성립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테스토스테론이 성욕에 관여하는 호르몬인 것임은 분명해보이나, 그렇다고 해서 성욕이 테스토스테론만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참고 기사) 성욕은 호르몬의 작용과 심리의 작용, 그리고 신체의 민감도 등 여러 요소에서 복합적인 영향을 받아 일어난다. 테스토스테론이 아무리 많이 분비되더라도 심리적 영향, 신체적 요소 등이 성욕을 일으킬만한 조건이 되지 않으면 성욕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여성의 성욕을 연구한 진일보한 사례 등을 살펴보면 여성과 남성의 성욕은 거의 같거나, 여성이 약간 못 미치는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굳이 여성과 남성의 성욕의 차이를 나누자면 남성은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고, 여성은 심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차이 정도일 뿐일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가 남성의 경우 즉각적으로, 여성의 경우 점진적으로 성욕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마치 남성의 성욕이 절대적으로 강렬한 것처럼 나타나는 것일까. 이는 사회문화의 작용으로 봐야 타당할 것이다. 즉, 남성의 성욕이 좀 더 공공연하게,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는 반면, 여성의 성욕은 좀 더 은밀하고, 수동적으로만 표현되기 때문인 것이다. 요즘 통계 자료 수치 등에서 여성의 성욕이 마치 증가한 것처럼 보이고 있는 것은 실제로 여성의 성욕이 '진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점차 표현할 수 있는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문명사회는 원시사회와 달리 응당 동물적인 본능을 서로 제어하고 살아가기로 합의한 사회체계이다. 이를 포기한 사람은 문명인이 아닌 야만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몇몇 진화론 학자들은 원시 시대 남성의 '번식 본능'을 거론하며 남성성욕억제불가론에 깃발을 들어준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열심히 따지고 들어가면 여성들도 할 말이 많다. 또다른 역사학자들에 의해 원시사회는 모계사회, 혹은 모권사회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사회에서 성욕의 주도권을 지니고 있는 것은 과연 남성이었을까, 여성이었을까? 응당 여성에게 결정권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과는 반대로 이 시대에는 여성이 훨씬 더 성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분출했으며, 성적인 활동을 왕성하게 즐겼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남성의 '번식 본능'은 여성의 성욕에 봉사하는 정도의 위치에 불과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모계사회에 대한 참고 글 링크) 여성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남성이 물리력으로 여성을 공격하고자 했을 때는 그 여성이 거느리고 있는 수십 명의 자식들이 가만 있지 않았으리라. 그러므로 우리의 막연한 상상과는 달리 원시사회는 오히려 남성의 성욕이 훨씬 더 강력하게 억제되는 사회였을 가능성이 높다. 남성 '번식 본능론'도 사실 따지고 보면 '테스토스테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그 이론적 취약성이 드러난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펴보았지만 '남성성욕억제불가론'은 아직까지는 희박한 가설에 불과해보인다. 모쪼록 이 이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시는 분들은 좀 더 심층적인 연구에 박차를 가해주시면 좋겠다.
자, 본론으로 돌아와서 남자 아이들의 성폭력 예방 교육 문제를 얘기해보자. 많은 남자 아이들이 위에 갈파한 여러 그릇된 설들에 경도되어 자신의 성욕이 신성불가침의 무엇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고 만다. 이 부분을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만 '성폭력' 문제에서 '성'의 부분이 일정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일차적으로 남자 아이들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것은 '발기'와 '성욕'의 차이다. '발기'는 자연스런 신체의 현상으로 성적인 자극을 받으면 발생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여자 아이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여성의 클리토리스도 발기를 한다. * 참고 기사) 이처럼 자극에 대한 반응을 모두 성관계를 갖고 싶은 욕망으로 '해석'한다면, 아 정말 이 세상은 살기 힘들어진다. 인간은 차라리 동물의 왕국에 출연하는 동물로 살아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발기'는 단지 내가 성적인 자극에 반응할 수 있는 성적으로 건강한 생물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호 정도로 가볍게 이해하고 지나가는 편이 좋다. '발기'가 일어날 때마다 곧바로 성욕과 연관시키고, 아! 성욕이 일어났어! 자, 어서 성욕을 해소합시다! 라고 사고가 전개되는 것은 자연에 해석을 덧붙여 발생시키는 인위적인 작용일 뿐이다. 발기는 일어났다가도 곧 사그라드는 것이니, 내버려두면 된다.
아마도 남자 아이의 경우에는 위에 언급한 '테스토스테론'의 영향 덕분에 심리적 요소 없이도 이 발기라고 하는 현상이 부지기수로 일어날 것이다. 그런 경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영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면 열심히 자위라도 한 판하고 말면 그만이다.
'성욕'은 호르몬과 심리, 신체적 요소 등이 서로 맞아떨어졌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특정한 상대와 신체적 관계를 맺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으로 한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남자 아이들의 경우 내가 지금 일으키는 있는 마음이 단순히 호르몬에 의한 '발기' 현상인지, 심리적 갈망이 결합된 '성욕'인지를 적극적으로 구별해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발기'와 '성욕'을 구별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성욕억제불가론 같은 것에는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 정말로 최상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성관계는 호르몬과 심리, 신체의 감각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한 것임을 알 필요가 있다. 그저 호르몬의 분비에 따라 동물적으로 배설하는 식의 성관계는 적어도 문명인의 성관계라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원시인의 동물적 섹스를 추구하는 특별한 취향을 지닌 사람이라면야 내 이야기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겠지만 말이다. (뭐, 개인의 특수한 취향은 존중할 수 있다. 물론 범죄가 아닌 한에서.)
자라나는 성기발랄한 남자 아이들에게 나의 해법을 좀 더 명쾌하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발기에는 자위로 대응하고, 성욕에는 사랑으로 대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남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교육 강의를 할 때는 건강한 자위법에 대한 설명에 비중을 많이 두는 편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성욕'이 발생한 경우에는 먼저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본연을 지키고, 매너로서 상대를 대하며, 상대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서로 공감대를 온전히 형성했을 때, 그리고 책임질 수 있는 상황에서 건강하게 성관계를 가지라고 조언한다.(나는 고등학생 이상 정도의 아이들에게는 결코 무조건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는데, 그렇게 조언하는 편이 오히려 책임 질 수 있는 상황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부족하나마 남자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성폭력 예방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내 지식과 경험 수준에서 풀어봤다. 요즘 들어 각종 언론 상에서 여성과 남성의 성대결 구도를 많이 접하게 된다. 대체로 남성의 인식 수준이 지나치게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지금 우리 남성들이 조금씩 느끼고 있는 피해의식을 여성들은 수천 년 동안 느껴왔을 것이다. 역지사지의 관점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오히려 진정으로 우리 남성의 몫을 정정당당하게, 공평하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성폭력 예방도 자꾸만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우리 남성들 스스로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남성 동지들이여, 부디 떳떳한 남자가 되자. 모쪼록 부족한 글이 남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께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2015. 5. 20.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