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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May 28. 2017

신여성이 있던 자리 1

페미니즘 읽기 4-1

1. 신여성이란 무엇인가


1) 근대와 신여성


서구 근대화의 물결에 떠밀려 개화기를 맞았던 조선은 근대의 신분제 붕괴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자유론과 평등론의 논리에 바탕을 둔 양성평등 사상(이하 성평등 사상)*의 영향을 받게 된다. 대표적인 근대 자유주의 성평등 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이 그들의 자율성을 행사하고 그들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하는 사회가 곧 정의사회'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여성도 한 개인으로서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동등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69년에 출간한 저서 <여성의 종속>을 통해 무려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밀의 이와 같은 자유주의 페미니즘 사상은 조선 개화기의 여성론으로 이어졌다. 근대 조선의 성평등론자들은 첫째로 여성의 동등한 교육 기회를 강조하며, 둘째로 여성의 자립을 권장했다.


존 스튜어트 밀의 반려자 해리엇 테일러 밀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실상 밀의 여성주의 사상을 창조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당대의 한계는 분명했다. 근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이러한 생각은 지나치게 세계를 낙관적으로 보고, 한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제도와 역사의 그물망을 간과한 측면이 있었다. 실제로 개화기의 여성교육은 그 화려한 미사여구와는 달리 현모양처, 혹은 현처양모를 배양하는 일에 머무르고 있었으며*, 여성이 애써 새로운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당시는 그러한 여성이 사회로 진출해 남성과 동등하게 활동할 수 있을만한 조건이 성숙되어 있지 않았다. 


이처럼 근대는 1920년대 신여성들의 마음에 커다란 낭만적 이상으로 다가왔지만, 당시 조선사회의 현실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았다.


* 이 글의 작성 시점은 2005년입니다. 당시에는 양성평등이라는 표현이 학술용어로 흔히 통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젠더에 대한 관점이 보편화되고, 다양한 성정체성을 지닌 성소수자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생물학적인 특성에만 기반한 구분법인 '양성'은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이 온당하게 되었습니다.


* 여자는 嫁(가)하여 夫(부)를 翼(익)하고 家(가)를 理(리)하며, 자녀를 부육하는 책임을 負(부)하여 일가의 행복을 증진하고 이를 推(추)하여 국운을 椑補(비보)함도 큰 것이니 국가가 어지 여자 교육을 중요히 여기지 아니하리오. -1908년 4월 1일 한성고등여학교 설립시 순종비가 내린 휘지의 내용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최혜실> 34P 



2) 신여성 출현!


조선에서 '신여성'이라는 새로운 여성의 무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이다. 이때 등장한 제1세대 신여성 김명순, 윤심덕, 나혜석, 김일엽 등은 모두 1910년경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세대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은 1910년대의 유학생활 동안 당시 일본에 출현했던 히라스카 라이초우 등의 신여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스웨덴의 작가 엘렌 케이나, 러시아의 콜론타이 등의 양성평등 연애론에서도 깊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나혜석. 국내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조각가. 만평가. 소설가. 수필가. 기자. 사회운동가. 유럽 여행가.


파리의 풍경을 담은 그림과 함께 나혜석은 위와 같은 글을 후대의 여성들에게 남겼다


그리하여 1910년대의 유학생활을 마친 이들은 대략 1920년대부터 ‘신여성’ 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활발한 활동을 보인다. 이들은 모든 거대담론을 뛰어넘어 개인적인 사랑의 극대화를 지향하는 자유연애론을 뿌리정신으로 삼아, 당시 조선의 낡은 인습과 제도에 도전한다. 그들은 최초의 여기자가 되거나*, 예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최초로 여성들만의 잡지를 발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불과 10년 정도를 끝으로 비극적인 결말과 함께 막을 내리고 만다. 


*한국 최초의 여성 기자. 최은희. 

*미술의 나혜석, 음악의 윤심덕, 문학의 김명순 등. 모윤숙과 노천명 등도 비록 친일을 해서 그 빛이 바래졌으나 문학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김원주의 <신여자>. 1920년 3월 창간. 


3) 신여성의 너무도 빠른 퇴장


193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일본은 본격적인 전쟁준비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동양주의라는 사상이 유행병처럼 조선과 일본을 휩쓴다. 동양주의란 서양에 반대되는 동양만의 고유한 전통, 사상을 지키고, 모든 동양이 일치단결하여 서양 제국주의를 무찌르자는 것이다. 허나 일본이 내세웠던 동양주의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자발적 반성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제국주의적 야욕을 위해 서양의 오리엔탈리즘 개념을 차용한 것에 불과 했다. 서구가 바라보는 동양은 신비하고 여성적인 것이었다. 


1930년대 후반 이러한 동양주의의 기치 아래 신여성 및 모던 걸은 서구의 앞잡이로 비판받고, 근대화를 방해하는 골치 덩어리 정도로 취급되었던 구여성에 대한 예찬이 시작된다. 이와 동시에 신여성이라는 개념은 점차 쓰이지 않게 되고, 그 자리를 현대여성(모던걸)이라는 말이 차지하게 된다. 이 현대여성은 신여성과 구여성을 아우르는, 아니 좀 더 엄밀히 말해서 전시체제에 노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성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이미 '모던걸'을 바라보는 시각에 멸시가 깃든다.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된장녀-김치녀'라는 멸칭과 함께 생겨난 여성에 대한 오늘날 시각과 거의 일치한다


1920년대 신여성을 찬양하고 신여성과의 자유연애를 즐겼던 많은 남성들은 점차 1930년 후반 무럽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여성을 배척하고, 구여성의 모성과 정조관념을 예찬하기 시작한다. 당시 많은 남성들에게 신여성은 어쩌면 ‘합법적인 바람을 피울 수 있는 대상’ 쯤으로 치부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듯 시대적인 상황의 변화와 남성들의 태도변화에 따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여성은 날개를 채 펴보지도 못한 채 불과 10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그리고 충격적으로 사라져가고 만다. 


(2부에 이어서)


2005. 봄. 멀고느린구름.

* 2005년 초고를 기반으로 각주 등 일부 내용을 오늘날에 알맞게 수정했습니다.




참고도서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최혜실. 생각의 나무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2> 이배용 외. 청년사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 김경일. 푸른역사

<여성을 넘어 아낙의 너울을 벗고> 최은희. 문인재

<낭만적 사랑과 사회>재크린 살스비. 박찬길 역. 민음사

<전혜린 이야기>이덕희. 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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