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라이너 <플립>
처음 나의 세상이 뒤집어졌던 때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었다. 그날 학교를 마치고 아이들과 운동장에 어울려 놀았다. 해가 저물 무렵이 되어서야 집으로 향했다. 아이의 걸음으로는 40분 이상은 족히 걸어야 하는 비탈길을 노을빛에 떠밀려 걷고 있을 때였다.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황금빛 햇살이 두 눈을 찔렀고, 비탈 아래 건물 옥상에 널린 이불 빨래들을 지나 저 멀리 남쪽 바다에서 뱃고동 소리가 뿌우- 하고 들림과 동시에 내가 한 여자아이를 무척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여자아이는 2년 전 이웃집에 살던 여자아이였고, 이름의 끝자는 ‘연’이었다. 남자아이가 사랑을 알아차리기에 초딩 2학년은 너무 이르다고 쳐도,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야 “사랑을 했다~”라고 깨닫게 되는 건 또 뭔가, 그런 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기나 한 건가 싶지만... 나는 그로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역시 나의 첫사랑이라고 한다면 그 이웃집 소녀가 아닌가’하고 결론 지었었다. 그리 결론을 짓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연은 서울에 살았고, 나는 부산에 살았으니까.
연은 나보다 2년을 앞서 자신의 세상이 뒤집혀지는 경험을 했었다. 연은 내가 부산으로 떠나던 날 자신의 일기장을 내게 선물했는데, 그 일기장에는 나를 처음 만난날부터 시작된 1년 치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연은 나와 함께 골목길 사이를 달리고, 함께 꽃이 가득한 뒷동산을 오르면 세상에 반짝이 - 당대의 잇템이었다 - 가 뿌려진 듯하다고 일기에 썼다.
지금은 잃어버린 연의 일기장을 나만의 비밀장소에 앉아 틈틈이 읽었다. 내 비밀장소는 지나가는 구름과 바다로부터 번지는 노을을 구경하는 특별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연의 일기장을 읽을 때면 소독차가 내뿜는 하얀 구름 속을 연과 함께 손잡고 달리던 감각이 생생히 떠오르곤 했었다. 연은 내가 종종 불러주는 “동구밭 과수원길 -“로 시작하는 동요를 좋아했었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의 어느 쓸쓸하던 날에는 노을 진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과수원길을 불렀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뒤집어졌을 때 연은 이미 내 앞에 없었다.
어떤 사랑은 너무 이르고, 어떤 사랑은 너무 늦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사랑을 놓친다. 영화 <플립>의 소녀 줄리는 먼저 길가의 플라타너스 나무 꼭대기에 올랐다. 소녀 줄리가 우듬지에서 사랑에 물든 마음으로 바라본 세상은 아름답고 온전하고, 성숙했다. 소년 브라이스는 플라타너스 나무에 오르지 않았다. 아직 뒤집어지지 않은 세상은 추하고, 단편적이고, 미성숙했다. 소년 브라이스에게 플라타너스 나무 위로 오르고 싶은 마음이 찾아왔을 때, 플라타너스 나무는 이미 잘려나간 뒤였다. 줄리가 플라타너스 나무를 마지막으로 지키려고 했던 바로 그날에 브라이스는 줄리를 외면했다.
언젠가 당신의 플라타너스 나무가 잘려나간 날에 나는 곁에 있지 못했다. 인생에 그런 날들은 어리석게도 여러 번 반복되었다. 꼭 사랑뿐이겠는가. 우리는 올라가 보았어야 할 숱한 플라타너스 나무들을, 배움과 도전의 기회들을 그냥 지나치며 살아간다. 잠시 멈추고 그 위를 올려다 볼 생각도 못한 채로, 전경을 바라보지 못하고 부분 속에 안주한 채로 따분한 어른이 되어 간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깨닫는 것이다.
아, 바로 그때가 당신의 플라타너스 나무가 잘려나간 날이었구나.
아, 바로 그때 나의 플라타너스 나무도 함께 잘려나갔구나.
<플립>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우리들에게 봄처럼 미소 지으며 말한다. 플립(flip). 그냥 뒤집으세요. 새로운 시작의 설렘이 가득한 계절이다. 모두 모쪼록 그냥 뒤집어 보시기를.
2018. 4. 3.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