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열 <뷰티 인사이드>
아주 어려서부터 얼굴밝힘증이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형이 모두 상당한 미모를 소유한 탓임에 분명하다. 자연스레 아름다운 외모에 이끌리며, 아름다운 사람들을 좋아해왔다. 누구나 그런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나는 좀 편향성이 심했다. 동성 친구마저도 외모의 매력이 중요한 관계의 요인이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중고등학생 시절은 물론 당대의 미인들을 흠모하는 일로 소년 에너지의 절반 가량을 소모했고, 스무 살이 넘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들만을 사랑했다. 아니, 상대가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면 애초에 사랑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이토록 외모지상주의자인 내게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어째서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
한효주가 맡은 가구 큐레이터 ‘이수’는 이상적인 가구를 만드는 젊은 목수 ‘우진’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런데 우진에게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매일 잠에서 깨어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모습이 바뀐다는 점이다. 단지 얼굴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체형, 목소리, 나이, 성별, 국적까지 모두 변한다. 우진을 우진이게끔 하는 외모는 이 세상에 없다. 가구를 사랑하는 젊은 목수 우진은 시시각각 바뀌는 외모 속의 영혼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마치 오래전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본질적 실체인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처럼, 우진의 외모는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이수는 그런 우진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백종열 감독은 사랑이란, 인간의 외면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향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혹은 믿고 싶거나, 또는 그래야만 한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수는 우진이 갑자기 노인이나 어린 아이가 되어도, 여성이 되거나, 추한 외모를 지녀도 변함없이 그를 사랑해야 한다. 다만, 우진이 걱정하는 것은 어느날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 속에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것뿐이다. 이수와 우진, 두 사람의 사랑은 서로가 함께 나눈 무형의 시간 속에서 싹트고, 무형의 마음 속에서 자라난다. 감독은 그리하여 사랑이란, 인종, 성별, 나이, 외모 등등에 관계 없이 오직 마음 대 마음으로 성립한다고 예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좋다. 하지만 질문을 거꾸로 해보면 어떨까. 우진은 어째서 이수를 사랑하는가. 우진은 이수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어도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때로 사랑은 외모와 무관해보이기도 한다. 한효주처럼 아름다운 여성이 종종 일반적으로 아름답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남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그 역도 성립한다. 동성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왜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착해서요.”라거나 “재밌는 사람이라서요.”라고 답한다. 마치 외모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나는 단지 상대의 이데아(내면 속의 진정한 실체)를 사랑한다는 듯이.
그러면 고약한 나는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그 사람의 외모를 떠올리지 않고 그리워할 수 있나요. <뷰티인사이드>의 이수는 우진을 그리워할 수 없다. 이종석의 얼굴로 우진을 그리워했는데, 정작 만남의 장소에 나타난 것이 우에노 주리라면 그 그리움이 과연 충분히 해소될 수 있을까. 모든 추억은 장면과 소리, 냄새, 감정의 결합체다. 그 중의 어느 하나를 지워버리면 추억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평생 외모의 아름다움에 집착해온 나로서 말하자면, 아름다움이란 절대평가로 성적을 매길 수 없는 것이다. 당신에게 아름다운 것이 곧 나에게 아름다울 수 없다. 오직 나에게 아름다운 것만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나의 연인이 못생겼다고 하여도, 내 눈에 멋져 보이는 구석이 있다면 그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다. 더군다나 그는 나와 함께 한 반짝이는 추억을 그 얼굴에, 몸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내가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워지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아까 전에 들른 편집샵에서 본 고양이 모양의 도자기 피규어가 잊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아름다운 것이다. 어제 만난 소개팅 상대를 어쩐지 다시 보고 싶다면, 그는 아름다움을 품은 사람이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외모를 떠난 사랑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극단적인 실험을 했다.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다. 사랑은 여전히 당신의 내면과 외면이 겹쳐지는 그 사이에 머무르고 있다. 내가 오늘밤 문득 당신의 얼굴을 그리워함으로써, 그 속에 담긴 사랑도 캄캄한 밤하늘을 날아 내게로 온다. 그 순간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은 오직 당신 한 사람뿐이다.
2018. 5. 23. 장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