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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Aug 02. 2018

패신저스 /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모튼 틸덤 <패신저스>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사랑은 나의 외로움 속으로 상대를 끌어들이는 일이다. 훌륭한 심리학자들은 외로움이 깊을 때 만난 상대는 연인으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스스로 독립해 살아가며 아침 햇살을 보고 슬며시 미소를 지을 정도의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짝을 제대로 찾을 수 있으리라고,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되리라고 말한다. 


우리는 대부분 훌륭하지 못하기에, 그 반대의 방식으로 사랑을 찾는다. 장필순의 노랫말처럼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비로소 너는 나에게 와서 사랑이 된다. 상대가 나의 빈 세계를 가득 채워주기를 바라며 우리는 사랑을 한다. 텅 비어 있던 마음이 상대의 미소와 말, 향기로 가득해지는 순간에는 사랑이 내게로 왔다고 여기지만,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황량한 외로움의 세계 속에 두 사람만이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되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외치게 된다. 여긴 내가 원한 사랑의 낙원이 아니야. 여긴 사막이야. 


우리들은 삶이라는 막막한 우주 속을 떠돌며 사랑을 찾고


사랑은 우리를 구원할 것처럼 다가온다


영화 <패신저스>는 그런 사랑의 은유로도 읽힌다. 우주비행선 아발론호는 지구를 떠나 행성 홈스테드 2를 향해 120광년을 날아간다. 인공동면에 빠진 승객들은 120년 후 깨어나 홈스테드 2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러나 운석과의 충돌로 문제가 생긴다. 엔지니어 출신의 남성 제임스(짐) 프레스턴이 잠든 동면기가 오작동해 일찍 개방되어버린 것이다.  


짐은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잠들어 있는 텅 빈 우주선에서 홀로 깨어나 1년 동안의 삶을 산다. 그는 앞으로 89년을 더 혼자 살아야만 홈스테드 2에 닿을 수 있다. 끔찍한 외로움이 그를 사로잡는다. 외로움에 병든 그의 눈에 유명 소설가 출신의 여성 오로라 레인의 잠든 모습이 포착된다. 외로움의 병에, 사랑의 열병이 더해지고 만다. 짐은 자신에게 감염된 외로움과 사랑이라는 두 병을 견디지 못하고, 오로라 레인의 동면기에 손을 댄다. 


사랑이란 단지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는 행위인 것일까



짐은 오로라를 살해한 것과 마찬가지다. 짐은 오로라가 120년 후 얻을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짐이 지닌 외로움은 함께 나누어도 좋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짐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오로라에게 거짓말을 한다. 내가 당신을 이 사막에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신이 선택한 것이라고, 이것은 운명이자 ‘인연’이라고. 선녀의 날개옷을 훔친 나무꾼이 그 사실을 숨긴 채 선녀에게 내 아이를 낳아달라고 하는 것만큼 어처구니없는 기만이다. 


“왜냐면, 거짓말은 사람을 약하게 하니까. 마치 충치처럼 조금씩 썩어가게 하니까. 세월이 흘러도 사람이 강해지지 않는다면 바로 그런 경우겠지. 하지만 난 진실을 택했어.” 


터키 소설가 에란디스의 말이다. 한 사람의 삶도 그러하겠지만, 사랑도 그렇다. 오직 진실만이 사랑을 강하게 한다. 인간은 어리석기에 외로움에 사무쳐 누군가의 동면기를 의도적으로 열어버릴 수 있다. 병든 마음을 감추고 자신의 사막 속으로 상대를 끌어들일 수 있다. 다만 진실해야 한다. 거짓에 의지하면서 사막에 놓여진 상대가 내게 맑은 물도 주고, 시원한 그늘도 제공하며, 신선한 열매까지 선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넘어선 이기적 탐욕일 뿐이다.  


진실하지 않은 사랑은 결국 연극일 뿐이다


물론, 희극이 아닌 비극


진실을 알게 된 오로라가 짐에게 저주를 퍼붓고, 짐을 증오하기 시작했을 때, 짐 프레스턴이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이라고 중얼거렸다면 그는 단지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한 살인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천상으로 떠나버린 선녀를 따라 천상에 오르고자 하는 시도가 실패하고 서럽게 울다 닭이 되어버린 나무꾼의 뒷이야기가 없었다면, 나무꾼은 흔한 성폭행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를 사막에 초대한 죄는 오직 자신이 진실로서 상대의 오아시스가 되는 노력을 통해서만 경감될 수 있다. (물론, 그래봤자 범죄자인 사실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영화 <패신저스>에서와 같이 갑자기 현명한 중재자가 나타나 상처 입은 이의 분노를 누그러뜨려주고, 5,000명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핵융합 엔진이 폭발하려는 것을 단 둘이 막아야 하는 극단적인 협동과제가 주어지며, 나를 죽여 인류를 구하고,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기적이 여러분의 생에도 숨어 있을까.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어쩌면 외로움에 사무쳐 애정을 갈구한 이가 기꺼이 상대에게 아가페적 사랑을 보여줄 확률보다는 다소 높을지도 모른다. 


연이은 기적 같은 불행들이 남주인공에게 변명거리를 제공해준다


"우리는 우주의 미아 같은 존재였죠. 하지만 서로를 만나 새로운 삶을 얻었어요. 아름다운 삶. 당신과 함께라는." 


인생을 갈취당한 피해자의 고통과 속죄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얼렁뚱땅 엔딩을 장식하는 이 헐리우드식 해피 메시지는 오히려 나를 이 글의 처음으로 차분히 돌아가게 만든다. 역시 훌륭한 심리학자들의 조언을 명심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장면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역시 심리학자들의 조언을 마음에 새겨두자

 

2018. 7. 1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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