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잃어버린 사랑을 찾습니다 9

4. 공무도하가

by 장명진

4. 공무도하가



나는 한강 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신애의 집으로 갑자기 요섭을 한강공원 근처에서 보았다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끄느름하던 하늘에서는 결국 비가 내리 붓고 있었다. 비가 오는 까닭인지 도로에는 그다지 차가 많지 않았다. 시야가 젖어 든다. 서행을 하며 신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네 저 헌터입니다. 박요섭 씨가 한강공원에 있다고 전화가 왔는데요. 아, 네 그럼 한강공원 수영장 쪽에서 뵙도록 하죠.”


한강 다리를 건너 한강공원 쪽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는 한 대의 차만이 서럽게 비를 맞고 있었다. 감 빛깔의 마티즈다.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더니 이내 억수 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차의 뒷좌석을 뒤적거려 우산을 꺼냈다. 살 한쪽 실밥이 튿어져 있었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깜짝 후두둑 소리가 났다. 칫. 신들이 단체로 오줌을 갈기는군. 주위를 둘러본다. 이신애가 아직 도착할리 없지. 강바람이 빗방울들을 싣고 와 옷에 뿌려댄다. 단 벌 바바리의 곤욕. 이렇게 바가지바가지로 퍼붓는 비가 내리는 날의 강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강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도 새도 떠나고, 배들은 정물마냥 정박해 있다. 빗줄기들이 강물 속으로 투신자살을 한다. 풍덩 소리가 들려올 법도 한데, 빗소리와 이따금 들려오는 차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실연당한 젊은이가 강 복판으로 걸어가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시간. 찬 냇바람이 계속 불어온다. 허나 풀잎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빗 바람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지도 몰랐다. 문득 흑백사진을 찍고 싶었다. 왠지 흑백사진의 배경으로 요섭이 떠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의 냄새가 풍겨오는 것도 같았다. 이신애는 과연 살인자일까? 지고지순한 사랑의 화신일까? 강물이 영혼의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고 있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강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어느새 빗줄기가 약해지더니 주위의 모든 소리가 꺼져가는 화톳불처럼 사그라들었다. 고요한 시간에는 언제나 아내가 떠올랐다. 그래도 내 인생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까지 마음 먹게 했던 사람. 하지만 사랑에는 처음도 끝도 없다는 게 정답이었다. 첫사랑이란 것도 어차피 기억의 조작에 다름 아니고, 마지막 사랑도 죽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겨울이면 비 온 뒤에는 조금 으슬으슬 해지기 마련인데, 왠지 조금 푸근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의 힘일까.


손수건을 꺼내 방 둑에 깔아 퍼더버리고 앉았다. 이신애는 많이 늦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살인자인 걸까? 그래서 내가 낌새를 차린 걸 알고 이미 멀리 달아나버린 게 아닐까? 이신애라는 여자는 젊고 예쁜 여자다. 요섭 같은 장애인이라면 분명 이것저것 많은 보험에 들었을 것이다. 만약 요섭을 어차피 못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300만 원쯤 걸어봤자 손해 될 건 없을 것이다. 시체를 찾아도 돈은 준다고 했으나, 요즘 1, 2억 하는 생명 보험금에서 300만 원쯤 떼어 준대도 별 일은 아닐 테지. 어쩌면 이신애가 내게 부탁한 것은 자기 대신 시체를 처리해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돌을 집어 강물에 던졌다. 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대학 졸업 후 처음 듣는 소리. 자연이란 녀석들은 어찌나 인심이 후한지 이렇게 화풀이를 해도 겨우 ‘퐁’ 할 뿐이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게. 모처럼 사치를 부려 하늘을 올려다보는 수고도 해보았다. 참 많다. 별. 서울 하늘에 이렇게 별이 많았던가. 언제부턴가 뉴스나 신문 따위에서 도심의 별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듣고 보고, 아예 밤하늘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나였다. 죽었던 별이 다시 살아난 것일까. 멀쩡히 살아있는 별을 죽였던 것일까.


“저.. 저기”


청량한 겨울바람 같은 여자의 목소리. 이신애였다. 가뜩이나 흰 얼굴이 달빛에 반사되는 통에 무척 창백해 보여 조금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이신애는 자기도 손수건을 꺼내 내 옆에 조금 간격을 두어 깔고는 살짝 앉았다.


“없네요…”

“네?”

“아… 죄송해요. 먼저 와서 여기저기 찾아보느라…”

“아아. 네에”


강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적막했다.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까.


“저어 죄송한 질문이지만 남편 사랑하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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