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잃어버린 사랑을 찾습니다 10

4. 공무도하가

by 장명진

“저어 죄송한 질문이지만 남편 사랑하세요?”

“네?”

이신애는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랑…해요. 진심으로”

“에에…”


진실일까. 신애의 표정과 목소리는 다분히 진실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의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무언가를 믿게 되면 한없이 맹신하게 되듯. 의심도 한 번 뿌리를 내리면 끝도 없이 뻗어간다. 그래서 의심의 뿌리가 닿은 토양 위에서는 그 어떤 사랑의 씨앗도 자랄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세상에 사랑 따윈 없죠. 모조리 죽어버렸죠.”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신애는 내 쪽을 이윽이 바라본다. 달 빛은 흰 얼굴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내려앉는 듯 그녀의 얼굴에는 달 빛이 하나 가득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죠. 근데 그 사람은 나보단 내 돈을 더 좋아했나 봐요.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사랑해서 결혼했죠. 풋. 어렸어요 참. 사랑하면 다 될 줄 알았더니. 그 사람 지금 위자료만 챙겨서 날 떠났죠.”


이신애는 가만히 강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살풋 웃더니 말을 시작했다.


“저도 처음에 결혼할 땐 행복했어요. 제가 원해서 부모님 반대도 다 어기고 한 거니까요. 근데 조금 살아보니 끔찍하더라구요.몸 성치 못한 사람과 산다는 거. 사랑도 식고… 한 번은 너무 힘들어서 같이 죽으려고도 했어요. 근데 말이죠.. 근데… 그 사람 웃는 거 보면 그렇게 못해요. 제가 이번에 남편에게 몹쓸 짓을 한 거 같아요. 딴에는 그 사람을 위한 거였는데. 정말 그이에게 필요했던 건 그런 게 아니었어요. 사람은 종종 끔찍한 오해를 하고 끔찍한 실수를 하는 것 같아요.”


이신애는 마치 오르페우스처럼 강물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젊은 날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읽으며 나는 사랑을 기다리는 자세에 대해 오래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난 한 여인을 오래 짝사랑하고 있었고, 몰래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인은 내게 이제 상관없는 사람으로 지내자고도 했고, 내가 준 것은 무엇이든 소중히 기억하겠다고도 했던 사람이었다. 사랑에 빠진 난 후자의 말을 더 믿었고, 오래 기다렸다. 그 사이에 그 여인은 몇 차례의 사랑을 했다. 나는 기다림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이 세상에서 진심은 어디에도 가닿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 그 여인이 내게 연락을 해왔다. 돈을 조금 빌려 줄 수 없겠냐고, 그 이후로 여인을 계속 만났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그녀가 돈 때문에 내게 돌아왔다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 여인이 바로 아내였다.


“이신애 씨.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아시죠? 거기서 말하는 기다림의 자세가 뭘 꺼 같아요?”


이신애는 피식 웃더니 자신의 가슴 쪽을 가리키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 속에 믿음의 뿌리를 푹 박아두는 거요. 눈보라에도 흔들리지 않게.”


호젓한 겨울 밤 공기와 강물결 소리에 취해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나. 겨울비가 잦아드는 것처럼 피식 웃으며 망연히 강물 저편을 바라보는 신애. 우리는 모두 소중한 것을 놓아버리고 서럽게 우는 백수광부의 아내였다. 마치 연극 무대가 암전 되고 주인공의 독백이나 새로운 사건이 시작될 것인 양 사위스럽고 휘휘한 순간. 비 온 후 몽몽한 강가의 시간은 슬렌탄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 저…저기! 저기!”


갑자기 신애가 강 복판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물 위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했다. 희미하게 촥촥 물결을 가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누구를 부르는 듯한 사람 목소리도 들려오는 듯했다. 요…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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