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공무도하가
“요섭 씨…? 요섭 씨이!”
아, 요섭은 마치 강렬한 회귀 본능을 지닌 은어처럼 강 저편에서 이쪽으로 헤엄쳐오고 있었다. 신애야 신애야 하며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신애의 목소리도 그에 질세라 거칠어졌다. 찢어발기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는 저승에 대고 지르는 것 같았다. 요섭은 지쳤는지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해오지 못했다. 그새 빗방울이 다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신애는 차마 물에 뛰어들지는 못하겠는지 연신 소리만 질러댄다. 아무래도 나라도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허나 그 사납게 요동치는 강물 속에 뛰어들어 살아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요섭은 팔을 젓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이내 물 위에서 그냥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으헝~~!!요섭씨이!!!거기 그대로 서요!!!”
철렁. 결국 신애가 물에 뛰어든다. 빗줄기가 세어진다.
‘나 사실 당신 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였어요. 구실이 필요해서 돈 빌려달라고 한 거구’
아내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왔다. 왜 그때는 그 말이 거짓 같았을까. 덜컹 강물로 뛰어든다. 신애는 뒤집어진 거북처럼 발버둥을 치지만 물살 때문에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서둘러 신애의 머리채를 잡고 물 밖으로 끄집어낸다.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눈이 벌게져서 발광을 해댄다. 그러나 물 밖으로 놓여나자마자 실신해버리는 것이었다. 이제 요섭을 끄집어 내야 했다. 비가 계속 머리통을 때려왔다. 요섭의 몸은 점점 물 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서둘러 물속으로 다시 뛰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닿으려고 헤엄쳐도 팔을 뻗어 보아도, 그에게는 이르지 못했다. 잠깐 뒷덜미를 잡았는가 해도 요섭은 마치 실체가 없는 안개처럼 아득히 수면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결국 물 속으로 가라앉아갔다. 따라서 물 속으로 들어갔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희미한 무언가가 자꾸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알아 볼 수 있었다. 어느새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와 함께 내 머리 속으로 희뿌연 안개가 깔리는 듯하더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누구를 부르는 듯한 한 여자의 절규와 풍덩 소리만이 옅게 들려왔다.
등이 시리도록 푸른 돌고래 위에 요섭은 앉아 있다. 주위는 온통 잿빛 안개. 푸른 등의 돌고래는 막막한 안개바다를 가로질러 잿빛 안개의 벽을 향해 간다. 물결은 가고 오고, 물결에 으쓱거리는 요섭의 뒷모습은 왠지 즐거워 보인다. 가위에 눌리는 듯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멍하니 돌고래와 요섭을 응시하는데, 저 멀리 태양이 솟아오른다. 눈 앞이 하얘진다. 주홍빛 햇살은 잿빛 안개를 걷어치운다. 까만 우주. 시력을 회복했을 때 내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고, 아래로는 별의 바다가 귀뚜라미의 노래를 부르며 귀똘귀똘 흐른다. 돌고래와 요섭의, 요섭의 어깨에 앉은 몇 마리의 쥐들의, 심장 고동소리가 쿵쿵 우주를 흔들며 느껴져 온다. 그리고 푸른 등의 돌고래는 태양을 향해 튀어 오르는 것이다. 별 방울들이 쪼로롱 꼬리를 그리며 쏟아진다. 태양을 앞에 둔 돌고래는 어느 새 여인의 실루엣으로 변화한다. 신애, 아내…나는 순간 모든 떠나간 것이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내가 눈을 뜬 것은 어느 병원 침대에서였다. 와락 밀려드는 한기 때문에 몸을 옹송그리며 창문 쪽을 보니 흰 눈이 내리고 있었고, 아내가 서 있었다.
0. 달력과 결혼 기념사진이 걸려 있던 벽 뒤의 다락방에서 발견된 요섭의 낙서들
우리 신애가 그 강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애가 앞으로 나는 이 방에서 자야한다고 했다. 이제 겨우 내 책을 냈는데, 내가 유명해져서 밖에 나오면 신애가 힘들다고 했다. 나가지 말아야지.
신애는 요즘 바쁘다. 자주자주 경찰서엘 가야 한단다. 누굴 찾을 사람이 있단다. 여기가 숨 막히다고 했더니 참으라고 했다. 누구 아는 사람 목소리가 들려도 나오거나 소리를 내면 안된다고도 했다. 신애가 무섭다 요즘. 그래도 엊그제는 떡국을 해줬다.
신애가 점점 예뻐진다. 신애는 예쁘다. 오늘은 밤에 신애랑 벽지를 새로 발랐다. 예쁘다 벽지도. 여기도 벽지를 발라주었으면……
요즘 밖에서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신애는 내 책이 유명해져서 신문에도 실리는 바람에 내 팬들이 오는 거라고 했다 히히. 하지만 나는 왜 내가 내 팬들과 만나면 안되고 숨어 있어야 하는 지 모르겠다. 신애는 조금만 더 참으라고 했다. 조금 더 참으면 좋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나도 밖에 나갈 수 있단다. 요즘에는 밤에도 나를 못 나오게 한다. 빨리 나가고 싶다.
보험사 직원이라는 남자가 찾아왔었다. 신애에게 내가 죽었을 경우에는 무지무지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평생을 써도 남는단다. 나는 그 얘기를 분명 들었다. 하지만 신애는 잡상인이라고만 했다. 신애는 이제 거짓말만 한다. 신애가 이대로 날 죽이려는 걸까?
나는 많이 생각했다. 신애를 위해 죽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말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가 찾아와 다시 다락방에 숨었다. 오늘은 또 웬 남자가 왔다. 신애는 그 남자에게 우리 지난 얘기를 한 시간도 넘게 했다. 신애가 정상적인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벽 뒤에 사는 괴물이다.
방의 물건들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이사를 가는 걸까? 어쩌면 신애는 여기 날 버려두고 혼자 가버릴지도 모르겠다. 지금 보니 여기 문이 열려 있다. 나는 멀리 가서 죽어야겠다 이만. 그래 그때 강으로 가자.
신애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