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여름밤은 무의미함 7 (완)

여름밤은 무의미함

by 장명진


노래에 취해 봄날의 어느 거리 속으로 걸어 들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상우의 목소리가 페이드 아웃되면서 카오디오가 함께 꺼져버렸다. 다행히 시동은 꺼지지 않았다. 언제 또 무슨 문제가 발생할 지 알 수 없는 고물차였다. 봄날의 어느 거리 속으로 돌아가는 것은 포기해야만 했다.


클러치에서 발을 천천히 떼고 들어왔던 곳으로 차를 몰아갔다. 문제가 또 생겼다. 일방통행이었다. 차들이 계속 대로 쪽에서 한강 공원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출구를 찾아야 했다. 차를 돌려 입구의 반대편 방향으로 가보았다. 디스토피아를 그려보았던 곳까지 이르렀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걸을 때 흔하게 보였던 것 같은 안내지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면서 정유소를 본 기억은 없었다. 난감했다. 그때 왼쪽 사이드 미러에 낯익은 두 사람의 모습이 맺혔다. 잠시 망설이다 기어를 중립에 두고 운적석 문을 열어 차에서 내렸다. 그들이라면 분명 이곳 지리를 꿰고 있을 것이었다. 널리 도를 전하기 위해서 홀로인 사람들을 찾아 구석구석을 누볐을 테니 말이다. 죄송한데요, 여기 출구가 어디죠. 두 도인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무심히 손가락으로 아까 갔던 입구 쪽을 가리켰다. 아니요, 입구 말고요, 출구요. 질문을 하는 건 익숙해도, 받는 건 그들도 불편한 모양이었다. 두 도인은 갓 잠들 무렵 나타난 모기와 실강이를 벌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좀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도인 쪽이 건조하게 답했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있어요, 한 100미터쯤? 아,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70도 정도 숙여 인사를 하고 재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두 도인은 들리지 않는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신자를 찾아 터벅터벅 차 옆을 지나쳐갔다.


알려준 대로 입구에서 100미터쯤 더 내려가자 출구가 나왔다. 꽈베기 모양의 고가 교차로를 통과하자 북쪽으로 가는 차선에 오를 수 있었다. 카오디오가 고장 난 탓에 들을 수 있는 것은 하이웨이를 질주하는 차들의 주행음뿐이었다. 모든 소리들이 속력에 휘감겨 마모되었다. 조금 더 범주를 넓히면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열어놓은 운전석과 보조석의 창으로 시속 90킬로미터의 바람이 쏟아져들었다. 오래전 좋아했던 <접속>이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전도연이 맡은 수현이라는 인물은 외로움이 깊어지면 심야의 드라이브를 즐겼다. 수현이 차창을 열고 귀엽게 파마한 머리를 흩날리며 밤 속을 달릴 때면 벨벳언더그라운드의 노래가 나왔다. 패일 블루 아이즈. 카오디오를 켜놓은 것처럼 귓가에 루 리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은 그 자체가 뉴욕이었다. 외로운 미드나잇의 뉴요커를 동경했던 젊은 예술가들은 그런 방식으로 영화 속의 수현과 동현을 뉴요커처럼 묘사했다. 고교 시절에 그 영화를 본 나 역시 야경과 드라이브, 고독으로 대변되는 도회지의 삶을 동경했다. 그리고 지금 꼭 그와 같은 장면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람은 점점 차가워졌다. 여름은 또 사라지고 있었다. 차창을 모두 올리고 히터를 켰다. 도로의 주행음들은 잦아들었고 차 안에 조금씩 온기가 돌았다. 그제서야 울기 시작했다. 마음 놓고 울 수 있었다. 짐승처럼 괴성을 질렀다. 그럼에도 침착하게 운전을 하고 있는 것이 서러워서 더 울었다. 울음은 소낙비처럼 쏟아졌다가 곧 그쳤다. 눈가에 물기가 남아, 날카로운 도시의 불빛들을 다소 몽글몽글하게 바꿨다. 이성도 마음의 불도 꺼진 몸은 사랑이 떠난 빈 방 같았다. 귀소본능에 의지해 파주로 차를 몰았다.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는 미분양 아파트 단지들을 지나 낡은 빌라촌의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렇게나 차를 주차하고는 라동 203호를 향해 걸었다. 문 앞에 서서 집을 나서기 전 자정에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00이가 자살했다. 시간 되면 좀 내려와라.'


비밀번호를 누르고 캄캄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마음의 풍경이나 실제의 방이나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숨 막히던 열기가 조금은 새벽에 밀려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물을 꺼냈다. 두 시간 후면 출근이었다. 목을 지나는 물의 선득한 냉기 탓에 감정이 깨어날 뻔했다. 오늘은 출근, 내일은 회사의 하반기 사활이 걸린 출장 업무. 00은 오래전의 친구였다. 그 친구보다 더 살아가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고 소식이 담긴 문자를 지웠다. 글자는 사라졌지만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냉수가 반쯤 남은 투명한 컵을 든 채로 베란다에 나섰다. 4-5층 남짓의 빌라가 밀집한 이곳의 공기엔 아직 텁텁한 여름이 머물러 있었다. 아래 쪽에 공터를 거니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끝나지 않는 열대야로 인해 사람들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잠든 것도 잠들지 않은 것도 아닌 채로 여름밤은 또 지나간다. 이토록 무의미하게.


- End


2018. 9. 7.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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