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 인테리어 최종화
“도를 도라고 이름 붙이면 그것은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인테리어 칼럼에서 갑자기 노자의 말씀이 등장하다니 괴상한 일이다. 쓰고 있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19주에 걸쳐 ‘파리지앵 인테리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인테리어의 세계를 소개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파리행 비행기표를 끊어 유라시아대륙의 저편으로 날아가 무작정 누군가의 집으로 들이닥친다면 어떨까. 일단, 주거침입죄로 경찰에 인도되겠지만 동시에 파리지앵 인테리어란 것이 전혀 엉터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접하게 된 영국의 인테리어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런던 인테리어’란 것도 당연히 없겠구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실제, 파리나 런던, 혹은 헬싱키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가 인테리어 잡지나 기사 등을 통해 접한 유럽식, 혹은 북유럽식 인테리어를 하고 사느냐 하면 사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곳의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국적과 시대를 초월하는 다양한 방식의 자기 표현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게 정답이다. 그렇기에
“파리지앵 인테리어를 파리지앵 인테리어라고 이름 붙이면 그것은 항상 그러한 파리지앵 인테리어가 아니다.”
파리지앵 인테리어의 핵심 요건은 개성에 따른 자유와 다양한 시대의 조합, 자연과의 조화라고 밝힌 바 있다.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 자신을, 나 자신이 사랑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것들을 자유롭게 드러낼 때 우리는 비로서 파리에 거주하지 않아도 파리지앵이 된다. 파리나 유럽의 물건들이 공간에 전혀 드러나지 않더라도 파리지앵 인테리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실제 파리지앵 중에서는 집 안을 온통 동양의 물건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도 있으니까.
연남동에 4년 간 거주하며 스스로 만든 파리지앵 인테리어의 공간 속에서 나는 무척 행복했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꿈을 꾸고, 사랑을 했고, 때로 슬펐고, 큰 좌절도 겪었다. 아름다운 공간 속에 있어서 기쁨은 더해졌고, 슬픔은 나누어졌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 오늘로서 파리지앵 인테리어의 연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5개월여 시간 동안 인테리어 칼럼을 아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언젠가 다시 좋은 시절에 새로운 인테리어 이야기로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오흐브와(au revoir)-
첫 번째 인사 - 못다 쓴 인테리어 '자투리로 만든 가구들'
응접실의 서가 앞에 놓인 책상은 직접 제작한 특별한 책상이지만, 지면 관계상 미처 소개를 하지 못했다. 욕실의 드럼 세탁기를 감싸고 만든 수납장 세면대 역시 마찬가지다. 몇 장의 사진으로나마 소개한다.
두 번째 인사 - 파리지앵 하우스의 일상
연남동의 파리지앵 하우스와 웃고 울었던 날들의 기억.
세 번째 인사 - 새로운 시작, 자기만의 집 (예고편)
유럽스타일을 모방하고자 했던 것을 뛰어넘어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나선 새 보금자리의 이야기.
조만간 여러분께 다시 들려줄 수 있기를 기대하며.
2018. 8월.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