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호 <항거 : 유관순 이야기>
고등학교 3학년 가을, 문예부실을 창문이 없는 창고방으로 옮기라는 지시를 받았다. 본래 문예부실은 학교 도서관과 이어진 제법 너른 별실에 자리해 있었다. 커다란 창으로 다대포의 먼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문예부실의 창가 자리에 앉아 공책에 무언가를 끄적이며 고등학교 시절을 아스라이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함께 보냈다.
여름 무렵에 전국 공모에 보냈던 소설이 큰 상을 받아, 교내에 유명인으로 등극해있던 시절이라 기세등등하게 주임실로 찾아가 학생주임 앞에 섰다. 완고하고, 변태적인 인물로 정평이 나있던 남교사였다. 문예부실을 부원들과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창고로 옮기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지로, 나는 ‘항거’했다. 곧 내 뺨으로 묵직한 손바닥이 날아들었고, 힘껏 내지른 발차기에 많은 교사들이 보는 앞에서 주임실 바닥에 나뒹구러야 했다. 그렇게 학생주임실 바닥에서 몇 차례의 발길질을 더 당했다. 항거는 무의미했다. 문예부실은 탈의실로 쓰이던 조그만 창고방으로 이전되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스무 해가 다 되어 가지만, 나는 그 ‘항거’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수치스럽기만 하고 아무런 소득도 없이 종결된 초라한 항거였으나 이제와 생각하면 그 순간은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중 하나였다. 그날 내가 학생주임실의 문을 거침없이 열고, 악명 높은 학생주임의 면전에서 전해야만 할 말을 분명히 전하지 않은 채 어른이 되었다면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 전해야만 할 말을 그저 마음으로 삼키는 어른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항거는 우리 민족이 침략자 일제에게 전해야만 할 말을 분명히 전한 것이었다. 다음 세대인 우리는 그 덕분에 떳떳하게 지금도 일본에 대해 항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변함없이 당신들이 틀렸노라 말하고 있다고. 유관순 열사의 항거로 인해, 침묵과 외면보다 외침과 연대가 더 숭고한 것이었음을 우리 민족의 유전자에 새겨놓을 수 있었다. 불의에 굴하지 않은 뜨겁고 꼿꼿한 의기는 독립운동과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 그리고 촛불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가슴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실제의 유관순 열사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분명히 알기는 어렵다. 제 아무리 많은 사료를 찾아내 고증에 고증을 거친다고 해도, 그렇게 재현된 유관순 열사가 진정한 ‘사실’일지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들 마음 속에, 민족의 가슴 속에 남겨진 열사라면 알 수 있다. 영화 <항거> 속의 유관순 열사를 연기한 고아성 배우는 우리 가슴 어딘가에서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열사의 불꽃을 표현해냈다. 흑백의 화면과 고요 속에서 고고하게 빛나는 고아성의 눈빛과 의기어린 표정은 마치 본인역을 하고 있는 유관순 열사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1919년에 한 여성의 내면에서 이글거리던 거대한 불꽃이, 100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심장 속으로 들어와 불타고 있었다.
영화 <항거>는 고아성이라는 명배우를 통해 유관순 열사가 곧, 우리 민족에게는 새 시대의 프로메테우스였다는 사실을 재공표한다. 그리스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남성중심적이었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는 성을 구분하지 않고, 다음 세대의 모두에게 불꽃을 나누어주었다. 침략자에 대한 항거, 독재에 대한 항거, 공포정치에 대한 항거,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온갖 성차별과 기득권 적패에 대한 항거. 그 항거의 순간마다 유관순 열사는 불꽃으로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항거>라는 제목이 좀 초라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영화의 제목으로서, 아마 앞으로도 영영 이보다 좋은 제목은 없을 것이다. 영화의 말미, 일제에 순응해 살아가던 한 노인은 잔혹한 고문을 견디면서도 의기를 굽히지 않고 항거하던 어린 소녀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
유관순 열사는 간단히 답한다.
"그럼, 누가 합니까?"
2019. 3. 20.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