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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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우주 속에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기념일에 선물했던, 제 이니셜이 새겨진 펜으로 이 편지의 마지막 장들을 씁니다. 그런데 우주 속에 있다는 말은 얼마나 바보 같은 말인지요. 당신도 저도 언제나 우주 속에 있었습니다. 작은 별의 안 쪽에 있느라 더 큰 세계를 체감하지 못했던 것뿐이지요. 우리는 한순간도 우주인이 아니었던 적이 없습니다. 정정해서 말하자면, 저는 지금 별의 바깥에 있습니다. 사랑의 안과 밖이 서로 다르듯이 별의 안과 밖도 이토록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지구를 벗어나며 푸른 구슬 같다는 지구의 모습을 처음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가능하다면 우주선의 해치를 열고, 맨몸으로 우주 공간을 유영하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싶더군요. 물론, 그렇게 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겠지요. 그래도 좋겠다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타고 있는 우주선은 지금도 조금씩 지구로부터 멀어집니다. 달의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습니다. 달은 점점 커지고, 지구는 점점 작아집니다. 달을 지나서 더 먼 우주로 10년, 20년 항해를 계속해 간다면 당신이 있는 지구는, 우리가 이화동 언덕에 서서 바라보던 푸르고 붉고 노랗던 별들처럼 아주 작은 빛의 조각에 지나지 않게 되겠지요.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그 빛은 수십 광년의 거리를 달려와 제 눈동자에 맺힐 겁니다. 사랑도, 당신과 저의 사랑 또한 긴 세월이 흘러도 시간의 어딘가에 머무르며 그 빛을 미래의 우리들에게 전할 테지요.
우리는 서로 사랑했고, 이별했고, 다시 사랑하다 또 이별하기를 수차례 반복했었습니다. 지구가 아닌 달에 가까워지고 있는 탓인지, 이별의 이유 같은 것들은 우주의 먼지처럼 한 없이 사소해지고, 사랑의 이유는 지구라는 별 만큼 커져갑니다. 눈 앞에 펼쳐진 광막한 우주에 당신의 이름만이 부유합니다. 우주의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도 그곳에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 미지의 당신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항공기나 잠수함 속 같은 동그란 창들 밖에 손을 뻗으면 닿을 밤의 실체가, 우주가 있습니다. 그토록 가까이서 바라보고 싶었던 우주인데, 이렇게 직접 보니 이제 정말 알겠습니다. 우주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났을 뿐이고, 아무도 모를 이유로 우주 속에 던져졌을 뿐이고, 우주는 우리가 있기 아득한 오래 전부터 단지 저기에 표정 없이 캄캄하게 시간을 지나보내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우주는 의미가 없어도 무심하게 수십억 년을 그대로 살아가겠지요. 사람이라는 연약한 생명체들은 그렇게는 살 수가 없어서 의미를 만듭니다.
어린시절에 저는 외로워서 집이 없는 강아지에게 ‘우주’라는 이름을 붙여 사랑했습니다. 무의미한 가족을 떠나왔던 수연이와 저는 서로에게 새로이 가족이라는 의미를 주었고요. 수연이가 남겨준 고양이 인형 별이를 아끼며 무정한 세월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당신을 만나고 사랑하는 동안에야 저는 비로소 제 삶에 불빛이 켜진 것을 느꼈습니다. 태초부터 의미가 없던 우주에 사람이 만들어낸 의미는 모두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랑할 당신. 지구에서 건강하신가요. 우주의 의미를 찾아 달을 향했던 우주선은 이제 반환점을 돌아 다시 지구로 향하고 있습니다. 멀어지던 지구가 다시 가까워집니다. 아프고 허망하게 별이 되어 떠났던 모든 이들도 이렇게 우주의 반환점을 잠시 돌아 다시 우리들의 지구로 돌아올 테죠. 다시 사랑하고, 미소를 짓고, 여린 육체 안에 눈부신 꿈을 품겠지요. 최선을 다해 의미를 만들어 가겠지요. 그렇게 우리들이 별의 빛을 하나둘 더하며 아득한 은하 저편에 살고 있을 어떤 생명들에게 또한 희망의 푸른 신호를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편지지의 빈칸도 한 줄만 남았습니다. 당신을 의미 없게 대했던 모든 일들을 부디 용서해주세요. 사랑합니다. 저는 지금, 지구에 돌아왔습니다.
- End -
2019. 11. 29.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