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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Jan 23. 2020

결혼 이야기 / 사랑의 끝은 어디에 있습니까

노아 바움백 <결혼 이야기>


사랑의 끝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가끔 생각해볼 때가 있다. 끝(혹은 결말)이라는 의미에는 두 가지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완성', 또다른 하나는 '종료'다. 흔히 결혼을 '사랑의 완성'이라 칭한다. 사랑의 종료는 곧 '이별'일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면, 이혼은 무어라 불러야 할까. 이별이 사랑의 종료라면 이별 후에도 지속되는 여분의 마음은 또 무어라 불러야 할까. 어쩌면 세상의 끝이 없듯이 사랑의 끝도 없다. 세상에는 끝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시작도 없다. 사랑이 세상을 닮았다면 그 역시 시작도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해 사랑은 영원히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 그 자체일 뿐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파경을 맞은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의 이혼 과정을 통해 마음의 흔들림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겉으로 더 잘 보이는 결별의 주요 원인은 찰리의 이기성과 외도다. 그남은 이름 난 배우였던 아내의 경력을 활용해 연극계에서 꾸준히 성장했고,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대체로 일을 삶의 중심에 두었고, 니콜 또한 아내이기보다 연극 무대의 배우로서 냉정히 평가해왔다. 남편 찰리가 명망을 얻어갈 수록 아내 니콜은 점점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게 된다. 무명 감독과 유명 배우에서 10년 사이, 유명 감독과 흘러간 배우로 두 사람의 사회적 지위는 바뀌어버린다.


찰리가 찰리로 더 널리 불려지는 사이, 점차 니콜은 '엄마'로 불려진다


선량한 반려자이자 공동 양육자로 그려진 찰리는 물론 니콜의 불행을 의도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그녀의 불행타령이 오히려 병증처럼 여겨질 뿐이다. 그녀가 지난 세월을 부정하면 할 수록 덩달아 그남이 아름답게 추억하는 성장의 세월 또한 부당한 것으로 전도되기 때문이다. 찰리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증언을 부정해야만 명예와 추억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니콜이 지키려고 하는 것은 바로 지금의 새로운 삶과 아이와 함께 만들어갈 미래다. 과거를 바라보며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있었다고 말하는 남자와 지금을 바라보며 사랑은 없다고 말하는 여자. 과연 어느 쪽이 더 사랑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누가 더 상대를 사랑하고 있었던 걸까. 답은 역시 없다. 사랑이란, 어느 하루에는 생겼다가도, 또 며칠 뒤에는 사라진 것 같기도 한 물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가까웠던 두 사람은 점점 멀어진다


결혼식을 올린 후에도 사랑은 계속 너울댄다. 가까이 왔다가도 멀리 밀려나고. 높이 치솟았다가도 정적처럼 잠잠해진다. 이별 후에도 서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랑은 그대로 자기의 생명을 이어간다. 상대를 향해 욕설을 퍼붓다가도 문득 뜨거운 입맞춤을 떠올린다. 이 무한한 모순, 불완전한 마음의 물결 앞에서 인간이 만든 제도는 무의미한 별개의 인공 생태계일 뿐이다. 이혼 전문 변호사들이 대리하는 두 사람의 욕망과 상처는 그들의 것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것이 아니다.


영화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며 마무리 된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마무리하지 않는다. 어쩌면 찰리와 니콜 두 사람은 영화의 끝에서 영화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왔을 뿐이다. 한 부부의 이혼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에 감독은 어째서 '결혼 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아마도 이별 또한 사랑의 일부이듯, 이혼 역시 결혼의 일부라는 뜻을 담고자 했던 게 아닐까.


"사랑하는 두 사람이 아름답게 결혼했습니다."로 끝나는 동화책의 다음 편 같은 영화를 겨울의 정적 속에서 시청하며 어쩐지 슬픈 이 영화도 동화책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은 부부라는 관계를 지키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지켜내지 않았는가 싶어서다. 더욱 더 후회하고 번민하게 될 쪽은 분명 형편없는 밑바닥 내보인 그남 쪽이겠지만 말이다. 바로, 이 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노아 바움백 감독처럼.


2020. 1. 22.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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