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아사코 I & II : 잠들 때도 깨어 있을 때도>
서로를 바라보는 두 배우의 눈빛이 유난히 아름답다 여겼다. 그것이 진짜 사랑의 빛이었음이 밝혀져 하루치의 실검을 장악했다. 영화 <아사코>로부터 시작된 카라타 에리카(아사코 역)와 히가시데 마사히로(바쿠 / 료헤이 역), 두 배우의 사랑은 자기 자신들을 포함해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영화 <아사코> 또한 불륜을 저지른 배우들의 주연작이라는 오명만을 남긴 채 다른 수많은 영화들처럼 망각의 묘지 속으로 사라질지 모르겠다.
에세이스트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에는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도 좋았을 여인 아사코와의 풋사랑이 소개되어 있다. 단 세 번 보았을 뿐인데도 스위트피를 닮았던 아사코는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노작가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영화 <아사코> 속의 아사코에게 수수께끼 같은 예술가형 남자아이 '바쿠'는 피 선생의 아사코와 같은 인물이다. 아사코는 이유도 없이 바쿠가 좋다. 우리는 때로 사랑의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다 실패한다. 어떤 사랑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대개 그런 사랑은 이유도 없이 시작되고, 이유도 없이 끝난다. 마치, 덫에 빠진 것처럼 우리는 신이 마련해놓은 꿈같은 바다 속을 허우적거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와버린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헤엄쳤던 심해의 기억을 뒤쫓아 다시 물 속에 들어가보아도 이전의 그 장소를 찾을 수 없다. 심리학자나 뇌과학자는 사랑의 호르몬이 시효를 다했다고 말할 뿐이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랑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아사코가 '료헤이'를 좋아하기 시작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료헤이가 옛사랑 바쿠를 닮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료헤이는 바쿠처럼 제멋대로인 인간이 아니었다. 건실하고, 자상하며, 헌신적이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 아사코가 료헤이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사코는 료헤이의 곁에서 흔들린다. 종종 뒤돌아서 바쿠와 헤엄쳤던 심해 속의 시간들을 동경한다.
덫에 빠진 것처럼 우리는 신이 마련해놓은 꿈같은 바다 속을 허우적거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와버린다.
사랑에는 두 온도가 있다. 하나는 열熱, 하나는 온溫이다. 알 수 없이 갑자기 고조된 감정으로 시작되는 사랑은 뜨겁다. 오직 그 불길만이 두 사람의 존재 이유이기라도 한 것처럼, 사랑에 빠진 둘은 불꽃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만 나날을 이어간다. 서로를 천천히 알아가며 사랑의 이유를 발견한 뒤 마음을 쌓아가는 사랑은 따스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잃지 않은 채로 조금씩 시간과 온기를 서로에게 빌려준다.
열의 사랑은 그 뜨거움으로 조용한 온기의 가치를 망각하게 만들고, 온의 사랑은 자칫 뜨거움을 향한 갈증을 자아낸다. 두 사랑을 모두 경험한 아사코는 열과 온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한 사람이 열도 온도 모두 지니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드물게 우리는 그러한 경험도 한다. 까닭 없이 뜨겁게 시작했으나, 상대를 알아갈 수록 점점 더 상대를 좋아하고 신뢰하게 되는 경험. 혹은 담담한 만남들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영원히 사그라들지 않을 불꽃이 되는 경험. 그런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아마도 '사랑의 기적'이란 말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사랑에는 두 온도가 있다. 하나는 열熱, 하나는 온溫이다.
영화 속의 아사코는 바로 그런 경험의 주인공이 된 듯하지만, 현실의 카라타 에리카 씨는 어떤 삶을 걷게 될까. <아사코>는 허락되지 않은 사랑의 추문 속에 파묻히기엔 좀 아까운 작품이다. 아사코와 바쿠, 료헤이의 이야기 갈피에 놓인 조연들의 삶 또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등장인물 중 가장 긍정적인 인물이었다가 반신불수의 몸이 되고 만 오카자키, 주변의 저평가에도 아랑곳 않고 자기의 꿈을 향해 걸어가는 마야 등 인생의 희비극 속에 처한 청춘의 면면들이 차분한 인상의 화면 속에 서성인다.
두 온도를 지닌 것은 사랑만이 아니다. 삶도 마찬가지다. 청춘의 열기는 쉬이 식고, 우리는 다들 뜨거움 이후의 삶을 아직 식지 않은 온기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어떠한 날에, 푸르거나 그리운 날에 잊혀졌던 뜨거움이 다시 살아나 주먹에 힘을 힘껏 쥐어보기도 한다. 사라졌던 '바쿠'가 돌아온 것이다. 그의 손을 다시 붙잡고 지금의 삶을 뛰쳐나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을 지킬 것인가? 우리 중 누구도 다음의 장면을 알지 못하기에 망설인다. 아사코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영화 <아사코> 역시 단지 한 장면을 선택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당신이 선택한 그것이 바로 당신 인생의 정답일 것이라고. 정답이 없는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오직 정답밖에 없는 것이 자기의 인생이다. 삶에서도 사랑에서도 선택을 한 뒤 늘 후회가 깊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언젠가 다시 나를 찾아올 '바쿠'에 대한 동경이 사라지지 않았다. 상처 입히고, 상처 받으며 살아온 지난 날들이 영화의 마지막 순간 원경으로 잡힌 아사코와 료헤이의 추격신을 보는 순간, 달리는 차창에 스치는 도시의 불빛들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래, 이만큼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멀리 있는 청춘의 원경이 조금씩 끄덕여진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천국의 문일까, 지옥의 입구일까. 그 정답은 오직 우리 각자의 다음 삶만이 알려줄 것 같다.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두 배우의 삶도, 그리고 사랑도 오래지 않은 시간 사이에 제자리를 찾기를 기원하겠다. 아름다운 영화에 대한 소소한 보은이다.
2020. 1. 31.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