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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Jan 22. 2020

작가에게 날아드는 무례한 제안들

어느 하루의 이야기


종종 이메일 계정에 도착한 원고 청탁 편지를 마주한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며 기쁘게 클릭을 하고는 했지만 요즘은 심드렁하다. 또 무슨 감언이설로 남의 귀한 시간과 재능을 써먹으려는 것일까 하는 생각부터 드는 것이다.


'브런치 작가에게 제안하기'라는 버튼이 생겨난 이후에는 예전보다 더 자주 청탁 메일을 받는다. 지금까지 여섯 차례 정도 메일을 받았으나 모두 무례하기 짝이 없는 메일들이었다. 글을 쓰는 행위의 가치에 대한 일말의 지각도 없이 어쩌면 그렇게도 뻔뻔하게 '무료 집필'을 제안이랍시고 할 수 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무슨 영화를 공짜로 보여드릴 테니 글을, 무슨 책을 공짜로 드릴 테니 글을, 무슨 행사에 초대해드릴 테니 글을, 무슨 쿠폰을 드릴테니 글을... 글쓰는 사람이 '거지'인가? 나는 저런 무례한 제안을 하는 이들이 대체 어떤 생각으로 청탁글을 쓰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별 관심 없던 영화를 보는 데에도, 책을 읽는 일에도, 기꺼이 행사에 참석하는 것에도 모두 문필가의 시간과 에너지가 쓰여진다. 그걸 글에 대한 '보상'이나 '혜택'이라고 제안하는 이들은 청탁 대상인 문필가를 향해 "당신 시간 남아돌잖아요."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신들의 무례를 자각조차 못하는 무례한 치들에게 이제는 환멸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글을 쓰는 행위의 가치에 대한 일말의 지각도 없이 어쩌면 그렇게도 뻔뻔하게
'무료 집필'을 제안이랍시고 할 수 있는지


그래도 몇 번인가는 내 쪽에서도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당신의 제안은 다소 무례한 것이니 최소한의 원고료를 책정해서 다시 제안을 해달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그렇게 메일을 보내면 또 뻔하게 돌아오는 답장이 "저희가 이런 게 처음이라 얼마를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이다. 바보 멍청이도 의뢰인에게 그런 답을 들으면 구글 검색이라도 해서 원고료의 시장가격을 찾아, 이 정도면 될까요? 라고 물어볼 것이다. 3분도 걸리지 않을 그런 노력조차 귀찮아 죽겠다는 태도다. 거기까지도 인내를 하고 최소한의 가격을 친절히 알려주면 그 다음 수순은 또 뻔하다. "어? 제가 언제 작가님께 제안을 했었죠?" 라는 식으로 연락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몹시 모욕적인 일이다.


심지어 상대 업체의 사정을 고려해 내가 제안한 금액은 3만 원에서 5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문필가가 글 한 편을 쓰고 3만 원도 받지 못한다면 귀중한 시간과 경험을 담아 남에게 줄 글을 써야 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나. 글 한 편에 3만 원도 주지 못할 정도의 형편없는 업체라면 감히 누구에게 청탁할 생각조차 하지 마시라!


이따위 무례한 무료 청탁 풍습이 횡행하게 된 것은 무명작가라고 주눅이 들어서, 혹은 넉넉한 형편을 바탕으로 오직 명예를 좇아 함부로 무료 글을 공급해준 우리 문필가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절대' 무료로 내 글을 당신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모쪼록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료로 여러분의 글을 요구하는 무례한 이들은 어떤 감언이설을 늘어놓더라도, 사실은 결코 여러분을 존중하지 않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운영하는 곳에 글을 싣는다고 해서 명성이 드높아질 일도 없다. 오히려 참고 기다리다 보면 정말로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에서 연락이 올 것이다. 나는 한 편에 20만 원을 제안 받고 작업을 한 일도 있다. 1인 출판사의 편집자로서 글을 요청할 때 나는 늘 조심스럽게 편당 10만 원 이상을 제안한다. 그러니 다들 부디 저 무례한 자들에게 한 편의 글도 공급해주지 말기를, 우리가 공동으로 우리 노동의 가치를 높이기를 소망한다. 저 무례하고 무료한 제안들을 단호히 거절하자.


2020. 1. 22.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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