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오카야마의 전태일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by 장명진


오카야마의 전태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처음 펼친 때는 중학교 2학년 즈음이었다. 그 시절 나의 화두는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였으니 이책 저책을 떠돌다가 마르크스에 이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20세기 말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북한이나 사회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창문을 닫고 밖으로 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의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동네 도서관에는 <자본론>을 청소년 수준에서 풀어 쓴 책이 서가에 당당히 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불과 몇 해 전까지 공산당이 싫어요 라는 주제로 교내 그림대회의 상장을 노리던 나는 파파 스머프의 붉은 책을 탐독하며 이른 나이에 빨갱이가 되었다.


가난한 공장 노동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일자리에 맞춰 초등학교 전학을 여섯 번이나 다녀야 했던 나는 어린 시절 내내 친구가 없었고, 한 번 학교를 옮길 때마다 매번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돌입해야 했다. 일단 ‘거지’라고 놀리는 인간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나는 어린이답지 않은 기품을 갖추는 방식으로 가난의 흔적을 지우고자 했고, 초등학생 시절에는 그런 전략이 그런대로 먹혀들어갔다. 하지만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중학교에 들어서자 기품 같은 것은 1년 내내 산책을 하지 못한 동네 개에게 던져줘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었다. 가난은 금방 들통났고, 가난과 함께 무식을 겸비했던 나는 순식간에 온 학교의 동네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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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빨간 모자의 파파 스머프, 그리고 책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 씨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대를 당하고, 규격 외의 인간으로 분류되는 일들을 숱하게 겪으며 나는 늘 인간의 조건에 대해 고민했다. 인간은 왜 태어나서 이런 쓸데없는 불합리에 가담하거나, 피해자가 되는가. 부자와 빈자를 나누는 불공평은 어째서 세상에 존재하는가. 열네 살의 소년은 자본주의의 모순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계급혁명의 이상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이상에 지나지 않음도 철저히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중3 시절에는 늘 그 문제를 생각했다. 이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즈음 어머니가 일하던 비디오 가게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를 발견했고, 나는 한 세대의 시간을 건너 전태일 열사를 만났다. 그리고 청년 전태일의 숭고한 저항의 삶은 내 삶의 영원한 모토가 되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원산지와 유기농 표시를 교묘하게 속이는 식품회사의 사원으로 근무하다가, 거짓된 삶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회사를 그만두고 제빵사가 되기로 한다. 도시의 베이커리에 취직해 빵을 굽기 시작하지만, 새벽 4시 출근, 밤 12시 퇴근이라는 노동력 착취 구조에 환멸을 느낀다. 그는 시골에 내려가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고, 자연에 가까운 재료를 사용하는 빵집을 내기로 결심하고 실행한다. 수년 간의 시행착오 끝에 와타나베 씨는 시골 고택에 자생하는 천연균을 활용해 빵을 굽는 일에 성공한다. 그에게 이스트를 첨가해 부패를 막고, 천편일률적인 빵을 굽는 기존의 제빵 체제는 화폐를 통해 사라지지 않는 부를 만들고, 똑같은 욕망을 찍어내는 자본주의 체제와 같은 것이었다. 와타나베 씨는 체제를 벗어나 시골에서 자연스레 부패하는 경제라는 자신만의 체제를 만드는 것으로 <자본론>의 이상을 변주하고 있다. 그는 이윤을 내지 않는 경영, 수익을 함께 일한 동료들과 공평하게 나누고, 일한 것 이상의 부가수익을 창출하지 않는 삶을 지켜나가고 있다.


고작 시골마을에 빵집 하나를 차려서 운영하는 것으로 자본주의는 무너지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불꽃이 되었던 청년도 자본주의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금융과 투자라는 시스템을 통해 자본주의는 세습자본주의의 형태로 더 공고화되었다.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이제 서로 이세계의 삶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극단적인 차이를 지니게 되었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어도 통장에 1억 정도 주어질 수 있는 청년의 삶과 온갖 욕망을 억누르고 10년을 존버해야 1억을 모을 수 있는 청년의 삶은 같은 인간의 삶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다. 여전히 후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게 자본주의의 공고한 아성은 어린 시절 느꼈던 것보다 더 높고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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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한 세습자본주의의 아성에 맞서 우리는 어떤 다른 미래를 구워낼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자기계발서와 재테크서적의 안내에 따라 충실한 체제의 팔로워가 되어, 그래도 이 세계 속 나의 영토를 마련하는 일일까. 한 인간의 삶으로 보았을 때 그렇게 땀 흘리는 삶은 충분히 훌륭하고, 나름의 완성을 추구하는 건강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같은 인간에게는 그런 방식은 영 성미가 맞지 않는다. 나는 늘 와타나베 이타루와 같은 새 시대의 전태일들에게 마음이 이끌렸다.


자본주의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삐딱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본주의를 떠나는 일 뿐이다. 자본주의 밖에서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를 실험하는 것, 그 세계를 기필코 성공시키고,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다음의 청년들을 유혹하는 것. 조용한 혁명의 새벽은 밝아오고 있다. 희망따위 없다면 새로 만들어버리자. 자연과 끝없이 대화하며, 끝내 자기만의 마르크스 빵을 만든 와타나베 씨의 삶은 그 어떤 적녹 정당의 구호보다 호소력이 짙다. 말보다 삶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더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2020. 9. 6.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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