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의 이야기
노을이 질 때면 아름다운 것들의 죽음을 생각한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그 아름다움에 기대어, 아름다움을 힘으로, 아름다움을 숨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끝내 스러지고 마는가.
해질 무렵의 빛은 마치 골든에이지의 빛처럼 찬란하게 빛나다가 조금조금 연해진다. 이내 어슴푸레한 어둠에 먹히고 만다. 불을 가진 인간들은 밤이 와도 거짓 하루를 연명하지만, 사실 낮짐승의 시간은 노을과 함께 끝나는 것이다.
나의 해질무렵은 언제 였을까. 지나왔을까 아직 오지 않았을까. 이 글을 쓰는 바로 지금일까. 한 주 전 받아온 꽃다발이 벌써 시들었다. 여름의 장미는 언제까지 피어 있을까. 이 물음은 구글에게 묻는 것이 아니다.
21세기의 우리들에게는 몇 잔의 사랑이 주어졌을까. 나는 내게 주어진 사랑 중에 몇 잔을 들이켰을까. 정말 중요한 질문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다. 부엌에는 이제 다섯 번 커피를 내릴 수 있는 분량의 원두만이 남아 있다. 내게 커피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던 점장님은 아마도 자기 삶의 무게를 힘껏 견뎌내고 있겠지. 삶은 대체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이들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질문을 밤이 새도록 삼켰을지도 모른다.
존재의 의미 이전에, 삶의 의미를 묻고 또 물었을 테지. 나의 의미가 없어도, 삶의 의미가 있다면 나를 지우고서 살아가도 족할 테니까. 사실 모두 존재의 의미를 삶의 의미 위에 얹혀 놓고 살아가고 있다. 전깃줄 위에 작은새가 앉아 하늘이 보라색으로 물드는 것을 기뻐한다. 무엇이 작은새를 살게 할까. 창공을 날아가게 만들까.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는 삶은 영원히 해질무렵의 창가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하루하루 마음의 어딘가에서 전등불 하나가 꺼진다. 스스로 끄기도 하고, 저절로 꺼지기도 한다. 아마도 모든 불이 꺼지고 나면 캄캄한 밤이 오는 것일 테지. 나는 내 삶이 멸망하는 순간을 여러 번 지켜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지. 밤 뒤에는 반드시 아침이 있다는 것을.
먼 바다 위로 혼자 떠밀려난 모든 아름다운 사람들아.
살아서 그 아침을 만나자.
2021. 6. 13.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