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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Aug 01. 2021

무엇이든 가야금

어느 하루의 이야기


무엇이든 써보자고  달만에  자리에 앉았다. 날은 흐리고, 습한 공기가  몸의 숨구멍을 막고 있는 듯한 날씨다. 해야  일은 많으나 하고 싶지 않아서 농땡이를 부리며, 황병기 선생의 <침향무> 음반을 듣고 있다. 느린 가야금 소리가 어지러운 마음의 물결을 다스린다.


가야금의 음률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것이 매력이다. 우리네 삶과 닮았다. 곡의 어느 부분에서는 정말 곡이 끝난 것인가 싶을 정도로 긴 침묵이 있다. 어 끝났나? 하고 오디오 화면을 보면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기도 하다.


저마다 다른 운명의 벌판 위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막막한 세월은 가능성의 시공인 동시에, 두려움의 시공이기에 우리는 때로 그냥 그 벌판 위에 드러누워버린다.


나로 말하자면 그 세월의 어디 쯤에 납작 엎드려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드러눕자니 뭔가 남은 것 같고, 일어서서 어딘가로 향해 걸어가자니 막막하다. 그러니 사방을 둘러싼 안개 어딘가에서 구원의 빛이 반짝 비춰질 그 순간을 기다리며, 그저 엎드려 있는 것이다. 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게끔.


여기까지 쓰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빗소리와 가야금의 음률이 서로 엉망진창으로 어긋난다. 그러나 듣기에 나쁘지 않다. 자연은 불협화음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어째서 아름다운가. 중구난방이었던 청춘을 돌아보며 아름다웠다고 추억하는 그 마음과 조금은 닮아 있는 듯하다. 황병기 선생께서 새로운 곡조를 뜯기 시작한다. 이번 것은 빗소리 장단과 딱이다.


2021. 8. 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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