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의 이야기
거리에 나오지 않은 채로 집 안에서 휴대폰 달력만 살폈다. 10월이 되었으니 가을도 온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길에 나와 보니 나무들이 여전히 초록이다. 하늘은 까마득히 높아졌지만, 지상에는 아직 여름이 남아 있다. 언제부턴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의 세상에 더 속한 사람이 되었다. 현실보다 가상 속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인간의 수명이 제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봤자, 우리들은 0과 1이 만들어내는 세상을 떠돌다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오직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아갔던 옛사람들보다 나을 것이 있나 싶다.
무형들 속에 둥둥 떠있다 보면, 유형들이 그리워진다. 시각, 촉각, 후각, 무뎌져 가는 이런 감각들에 새로운 자극을 제공하고 싶어진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은 삶의 실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종종 찾는 곳이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중심로를 지나, 옛 책방무사가 있던 언덕을 넘어서면 인적이 드문 창경궁의 뒷마을이 나타난다. 작년 가을 이 장소를 발견한 이후, 마음이 지칠 때마다 찾아와 빈 거리를 혼자 걷고는 했다.
오늘은 레벨이 급감한 혼자력을 발휘하여 가보고 싶었던 까페에 들어섰다. 이 글은 그곳에서 쓰고 있는 중이다. 한창 옆에서 미술 작품 준비에 시끌벅적 들떠 있던 청년들이 자리를 떠난 후에는 음악과 나만 남았다. 누구의 연주인지, 제목이 무언지 모를 재즈 피아노 음악이 구름이 걷힌 오후 다섯 시의 하늘과 제법 어울린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라, 푸른 나무들은 무뚝뚝하게 나를 구경 중이다. 우리는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나에게 나무는 신비고, 나무에게 나는 신비겠지.
어떤 것들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끝날 것이다. 내가 우리 은하계를 넘어서 다른 은하계로 여행가보지 못한 채로 죽음을 맞이할 것처럼 말이다. 우리 모두 온 힘을 다해 애써서 살아가고 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로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생명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에. 삶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우리 모두의 엔딩이 결국 죽음이라는 점에서 대부분 방편적인 이유일 뿐이다.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삶의 이유는 “죽기 싫으니까”인 것 같다. 우리들은 힘차게 던져진 공처럼, 뒤돌아 간다는 선택지를 배제 당한 채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저마다의 운명인 것이고.
지난 1년 반을 탄환처럼 살았다. 내가 정말 실탄이었으면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탄 치고는 너무 생각이 많았다. 내 역할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방향에 대해 회의하고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한 마디로 고고하고 재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홀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테이블이 네 개나 비었다.
2021. 10. 9.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