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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Mar 12. 2022

오랜만에 봄을 걸었다

어느 하루의 이야기


오랜만에 나선 거리에는 봄이 선명했다. 코로나19가 터널의 끝을 향하고 있는 희망의 봄이다. 그러나 역대급 비호감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러시아는 중2병의 소년처럼 허황된 제국의 야욕으로 전쟁을 시작했고, 군부 독재세력에게 점령당한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간다.


이토록 문제 투성이인 세상이지만, 햇살은 거리를 따뜻하게 비춘다. 100년 전 망국의 시절을 떠올리며 종로를 거닐었다. 절망과 희망이 뒤범벅이 된 시대에도 청춘은 내달리고, 소박한 삶은 존재한다. 도로를 달리는 초록색 따릉이와 봄옷을 입은 거리의 연인들이 계절의 노래를 공기 속에 퍼뜨린다.


친애하는 영풍문고 종로점에 들러 새로 나온 소설책들을 들춰보았다. 2년 가까이 본격적인 창작을 미뤄둔 채 직장일에 몰두했다. 내 언어가 나로부터 멀리 어느 먼 섬에 유배가 있는 것만 같다. 그 섬에는 공항도 항구도 없기에 나는 조그만 쪽배를 만들어 그곳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조금씩 천천히 그 항해를 시작한다.


우리의 봄은 도무지 어디로 향할지 모르겠으나, 나의 지도는 다만 내 안에 있을 뿐이다. 불행하고 행복한 모든 사람들이 집합 속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답을 만들어나가길. 그리고 그 답의 총합이 부디 조금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를 희망한다. 절망은 종종 희극 뒤에 온다. 그리고 때로 멸망을 피해 희망에 이르는 길목에는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2022. 3. 12.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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