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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Mar 18. 2022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어느 하루의 이야기


길었던 철야의 나날 끝에 휴가를 받았다. 어딘가 훌쩍 떠나볼까 궁리하다 오미크론 앞에서 생각을 접었다. 일주일 동안 집에서 조용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날이 계속 흐려서 한낮에도 집 안은 어둠침침했는데, 오히려 그게 좋아서 불을 켜지 않고 희미한 빛 속에 머물렀다. 아직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온전히 돌아오지 못했지만, 마치 족욕을 하는 것처럼 본래의 내 세계에 발목 정도 담그고 지냈다. 떠들썩한 세상의 일들에 신경을 끊고, 하루하루 음악 속에서 위로를 얻으며 지친 마음을 회복한다.


내 삶에 사랑이 없다는 감각이 이제 좀 익숙해지고 있다. 내 청춘의 아이콘과도 같았던 이상은 님의 ‘언젠가는’ 노랫말처럼,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것은 한 다발의 추억”이다. 우리는 모두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이도록 살아간다. 구글에 ‘격언’, 혹은 ‘금언’으로 검색하면 동서고금의 지혜가 쏟아지지만 우리는 알면서도 그저 살아간다. 그것이 현재진행형으로 살아가는 자의 숙명이라고 생각된다.  


인생은 아주 길지만, 돌이켜보면 삶의 방향을 결정 짓는 순간은 결국 다 어느 한 주, 특별한 하루의 시간 속에 깃들어 있다. 시간의 흐름을 고전적으로 시작과 끝 사이의 연속선으로 보면 그 특별한 하루조차 우리가 꾸준히 빌드업해온 하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이어져 있지 않고, 점점이 떨어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어떤 하루는 갑자기 돌출되고, 그 하루가 그 다음의 날들을 순식간에 전복시키기도 한다. 인생이 우리에게 무엇을 펼쳐보일지 알 수 없기에 삶은 재밌다.


그리고 그 진정한 재미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주연 배우가 될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어떤 배역이 들어와도 나의 것을 펼칠 준비를 해야 한다. 조연의 배역일지라도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될 각오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인생의 씬 속에서 무리하지 않고, 담백하게, 자신의 연기를 성심껏 펼치는 사람이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지만 거기에 집착하여 한 번에 무너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등을 펴고, 마음을 바로 세우고, 오직 자기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고 다시 다짐한다.


2022. 3. 18. 멀고느린구름.




A7R / Contax G 28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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