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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Aug 31. 2015

저녁이 깊다 / 저녁에는 저녁의 일이 있다

이혜경 <저녁이 깊다>



저녁에는 저녁의 일이 있다


어떤 신문 지면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 정치인들이 내세운 구호 중 가장 아름다운 구호로 선정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혜경 소설가의 『저녁이 깊다』를 읽고 다른 각도로 생각해봤다. 삶에 저녁이 있다면. 삶에 새벽이 있다면 그것은 유년기일 것이다. 아침은 청소년기이고, 정오는 20대, 오후 2시에서 4시 즈음은 30대 퇴근이 기다려지는 5시에서 6시는 40대에 해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7시에서 8시에 해당하는 저녁은 50대 즈음이지 않을까. 


『저녁이 깊다』는 1960년대에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두 아이가 함께 새벽을 맞고, 아침과 정오, 오후를 지나 저녁에 이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 산업화, 민주화, 삼풍백화점, 그리고 IMF. 소설 속의 두 주인공 기주(여)와 지표(남)는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한국 현대사'라는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위에서는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고, 강력한 주장을 내세우는 배우가 아니면 관객들에게 목소리를 전달할 수 없었다. 『저녁이 깊다』는 '한국 현대사'라는 공연이 모두 끝난 뒤, 주연 배우들이 모두 떠나가고 문을 닫은 극장 위에 오른 조연들이 건네는 이야기다. 그들은 주연 배우처럼 대단한 연기를 선보이지도 않고 크게 소리치지도 않는다. 내세울만한 대단한 주장도, 자랑할만한 대성공의 삶도 없다. 기주와 지표는 아직 불이 켜진 저녁의 극장에 모여든 소수의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 있어요. 우리도 이 삶을 이만큼 살아냈어요."


한국 문학사에는 정치사와 연계할 수 있는 화려한 이름들이 있다. 황석영, 조세희, 공지영 등등.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소설가 이혜경의 이름을 들은 적은 없다. '20년 만에 쓴 장편소설'이라는 광고지의 글귀를 보고서야 기주와 지표가 곧 작가 자신이기도 하겠구나 싶어진다. 비록 문명을 드높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저녁이 되어서도 한 편의 엄연한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소설가 이혜경은 아직 소설가로 살아 있다고 증명하는 듯이. 


저녁과 소설은 서로 어울린다. 저녁은 지나간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소설은 결국 삶에 대한 반추를 통해 쓰여진다. 저녁에 우리의 마음이 깊어지는 까닭은 지나온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지나온 시간은 물리적 시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다. 저녁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보는 시간이다. 소설을 읽을 때도 우리 마음은 저녁이 된다. 깊어지며 지금 여기에 없는 마음의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저녁이 깊다』를 읽는 동안 나는 마치 내가 미처 써놓지 못한 일기장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갈한 문장. 완고한 주장이 없는 독백. 선과 악을 나누지 않고 모든 인물들을 따스히 감싸는 시선. 현대사에 대한 담담한 스케치. 사실, 나는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오로지 책 표지의 아름다움만을 보고 이 책을 구매했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표지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책을 읽은 뒤 깨달았다. 아, 이 표지가 그저 예쁘게 보이려고 만든 게 아니구나. 바로 이 표지야말로 이 소설의 이야기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하는 이미지의 문장이구나. 나는 이렇게까지 작품의 제목과 내용, 표지가 삼위일체 되는 경우를 본 적이 드물고 드물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황홀하게 아름다운 보랏빛의 표지를 내려다보며 새삼 감격하고 있다. 


『저녁이 깊다』의 두 주인공의 삶을 지나쳐간 역사 중에 내가 함께 겪은 것은 삼풍백화점과 IMF 사태 두 가지뿐이다. 그럼에도 어쩐지 나는 내가 한편으로는 기주고, 한편으로는 지표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것은 아마도 이혜경 소설가가 역사 속의 사람이 아닌, 보편적 삶 속의 사람을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우리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쓴다. 누구는 평생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누구는 장소를 찾았지만 힘이 부족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또 어떤 누구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뿌리를 내린다. 저녁이 깊어지면 우리는 우리가 서있는 자리를 돌아봐야 한다. 자기가 뿌리 내린 곳을 직시해야 한다. 그때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들은 이윽고 찾아올 쓸쓸함을 견뎌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저녁이니까. 돌아볼 수는 있지만 돌아갈 수는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두들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늘 걸려 넘어지는 건 아닐까. 그리하여 사람 눈을 피하는 요괴들처럼 세상 그늘에 모여든 것은 아닐까. 여기가 바로 거기 아닐까. 마구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를 쳐내듯, 지표는 담배의 마지막 모금을 깊게 빨아들이고 비벼 끈다. 내일 출근하려면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한다. 담배 개비 끝동에서 달아올랐던 작은 불빛이 어둠에 잠겨든다."

- 282쪽


그러나, 저녁에는 저녁의 일이 있다. 마찬가지로 밤에는 밤의 일이 있다. 우리가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들기 전까지 아직 하루는 끝난 것이 아니다. 저녁의 소설가 이혜경의 『저녁이 깊다』는 바로 그 명백한 증거다. 문학사에 이 작품이 새겨지지 않아도, 나는 밤이 깊을 때까지 가장 높은 자리 중에 이 작품을 두고 기억하겠다.  


2015. 4. 16.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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