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의 이야기
언젠가 아주 작은 섬으로부터 삶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소년은 힘껏 달리면 30분도 안 되어 세상의 모든 끝에 닿을 수 있는 곳에서 자라났다.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섬의 동쪽 끝으로 가면 섬마을 아이들의 성과 같은 초등학교가 나왔고, 태평양을 향해 열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운동장에서 저마다의 꿈이 영글었다. 마을 중심에 자리한 교회당 뒷 편의 언덕은 밤하늘에서 내려온 별빛과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의 불빛, 그리고 멀리 육지 마을의 저녁빛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 빛들이 모여 소년의 우주를, 삶을 만들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삼천포의 작은 섬 ‘마도’에 다녀온 것은 작년 여름의 일이다. 스크류바를 입에 물고 서너 바퀴 돌리면 금세 다 녹아버릴 정도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땡볕에 녹아내리지 않기 위해 아버지와 나는 포구의 시장에서 밀짚모자 두 개를 사서 나눠 쓰고, 하루 겨우 네 번 운행하는 마도행 배편을 기다렸다.
아버지가 유년을 보낸 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벌써 여러 해 전부터였다. 섬이 지역 관광자원으로 인식되면서 집안 소유로 되어 있는 땅의 개발 및 보상 이슈가 생긴 것이 계기였다. 몇 평 되지 않는 땅이지만 학교와 인접해 있어 가치가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무심하게 그 얘기를 전하면서도 땅값보다 다른 데 생각이 떠나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시간의 물결을 거스르고 거슬러 수십 년 전 교정의 종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새마도호’라고 쓰인 배는 한 번에 스무 명 정도를 태울 수 있을 법한 작디작은 여객선이었다. 오래전 서너 명이 타면 족할 어선으로 바다를 건너 육지로 왔던 소년은 거의 반백년만에 다시 섬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귀향 소감을 묻는 나의 말에 아버지는 묵묵부답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섬을 이윽이 들여다보았다. 그 장면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우주의 처음으로 인도했다. 프로그래머 블라디미르 로마뉴크가 개발한 ‘스페이스 엔진’이라는 우주탐사 앱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지구에서 출발한 가상의 우주선이 3D로 구현한 우주 속을 빛보다 아득히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태양계를 지나, 우리 은하를 지나, 수천수억의 별과 은하를 건너, 시간마저 초월해 138억 년 전 빅뱅의 찰나까지 다다른다. 나는 10분 넘게 멍하니 그 영상을 바라보다 문득 아버지의 섬을 다시 떠올렸다.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 역시 아주 작은 섬이었다. 그 섬에는 138억 년 뒤에 마도의 언덕을 겅중겅중 뛰어다닐 작고 귀여운 아기 염소들의 태초도 있었을 것이다. 우주가 온 기적을 다해 낳은 작은 섬에서 소년은 자랐고, 갖은 풍파를 이겨낸 뒤 끝내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었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원망한 날들이 모래알처럼 많았다. 지난해 여름, 아버지의 고향을 함께 걸으며, 멀리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생각했다. 어떤 것들은, 다만 거기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다. 한여름의 마도에는 보랏빛 도라지꽃이 가득했다. 도라지꽃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었다.
2022. 9월. 멀고느린구름.
*<월간 에세이> 2022. 10월호 수록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