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읽기
트위터 계정을 삭제하기로 결심했다. 2010년 1월에 개설했으니 13년만이다.
그 세월 동안 트위터 공간에서 많은 인연을 만났고 1천 여명의 팔로워가 있었다. 장교로 복무하던 초기에는 주로 내 소설을 연재하던 사이트를 링크해서 알리는 용도 정도로만 썼고, 전역 후부터는 여러 사회문제나 정치현안 등에 대한 내 의견을 제안하는 매체로 활용했다. ‘트페미’라는 용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주로 페미니즘 이슈와 진보적 의제들을 다뤘고, 이따금 논의의 중심에 선 일도 있었다. 본래의 계정 개설 목적이었던 소설 독자 확보는 어느새 뒷전이 되었고, 천여 명의 팔로워 중에 내 책을 구입해주는 사람은 5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계정을 지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다양한 의견들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가운데서도 우리 사회를 진일보 시킬 수 있는 뜻깊은 비전들이 탄생하는 공간이라고 여겼기에 애정이 깊었다.
트위터와의 결별은 갑자기 찾아왔다. 지난 해 2월, 대선 열기가 가장 뜨겁던 시기에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던 집단에서 내 계정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대량 신고했고, 계정이 정지된 것이다. 트위터 측은 계정 정지의 이유를 명확히 공지하지도 않았고, 나의 세 차례 복구 요구를 모두 무응답으로 무시해버렸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 들어가 보니 ‘영구정지’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신중히 검토한 결과’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당사자인 나에겐 아무 얘기도 없이 도대체 뭘 신중히 검토했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물어봐도 말을 하지 않으니까.
짐작할 수 있는 혐의(?)는 내가 당시 지지했던 심상정 후보에 대해 아주 계획적이고 집중적으로 부정적 여론몰이를 하던 한 계정주에 대해, ‘정치적 바이럴 계정’이 아닌가 의심하는 트윗을 하나 올린 것이다. 그 계정은 민주당 경선 시기에 개설되었고, 주된 내용이 대부분 이재명 후보를 지원하는 정치트윗이었기에 정황상 추정해볼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다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화를 내며 이의제기를 했기에 사과도 하고 본래 트윗도 삭제를 했다. 그럼에도 그 계정주와 그를 따르던 집단이 나를 상대로 전형적인 트위터 사이버불링에 나섰고, 얼마 안 가서 계정이 멈춰버린 것이다.
그 계정주는 이후로도 부정확한 데이터로 트위터 내에서 심상정 의원을 악마화하는 작업을 했고, 소위 ‘개딸’이라는 집단을 형성하고, 박지현 비대위원장의 팬이 되었다가, 다시 이재명 의원을 지지했다가 하며 뚝심 있게 정치 바이럴 활동만을 지속했다. 나는 당시 여가부는 대통령이 된다고 당장 없앨 수 없다거나, 박지현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에서 곧 버려질 수밖에 없다거나, 결국 페미니즘 정치를 계속 이어갈 정당은 정의당일 것이라는 얘기 등을 했다가 아주 몰매를 맞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결국 내 예상이 거의 틀리지 않았다.
대체로 침착한 편인 내게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드는 버튼은 ‘억울함’이다. 어렸을 때 가난 때문에 도둑으로 몰리는 등 억울한 일을 너무 많이 겪은 탓인지 사소한 오해도 잘 참지 못한다. 평소의 나라면 트위터 코리아 앞에 가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계정을 복구 시키라고 1인 시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트위터를 조용히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허망함’ 때문이다. 나는 감히 페미니스트로 불릴 자격은 1도 없지만, 트위터 공간에서 반성하는 남성으로서 10여년 동안 성심껏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지지 발언을 해왔다. 지금은 연이 끊긴 친구에게 ‘여성인권운동가’로 불릴 정도였고, 관련한 일로 절교를 당하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라고 내가 고집을 피웠을까 싶으다. 또 나도 한때는 나꼼수 정봉주의 지지자였고, 이재명 성남시장의 트윗을 리트윗하고, 정청래 의원과 최강욱 씨를 응원하며, 조국 교수나 박원순 시장이 차기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했던 사람이다. 진보 정당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거의 늘 민주당에 표를 주어 왔던 사람이다. 그런데 태극기부대도 국민의힘도 아닌, 바로 그 트위터 페미니스트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내 계정을 정지시켰다는 사실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무를 느꼈다. 그렇게 치열하게 페미니즘을 외치던 이들의 귀결이 ‘이재명의 개딸’이라는 현실 앞에 깊은 당혹감과 자괴감도 함께 느낀다.
어떤 집단은 모두 틀렸고, 어떤 집단은 모두 옳다는 전제 속에서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이는 결코 페미니즘이나 진보적 정신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극단적인 대결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정치제도의 한계가 만든 웃픈 현실이다. 민주당의 열성적인 일부 지지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당했다고 해서 민주당 전체를 적대시하거나, 반대에 있는 국민의힘에게 무조건 힘을 실어주려고 한다면 나 또한 결국 극단적 양당정치를 고착화시키는 부품의 하나가 될 뿐이다. 집단의 힘으로 어떻게든 상대방을 흡집내서 무너뜨리기만 하면 승자가 되는 정치로는 더 이상 선진국으로서 대한민국의 건강한 미래를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유력 정치인이 그런 방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소위 팬덤정치다.
짧은 글만 쓸 수 있어서 격조 있는 토론이 불가능한 트위터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대결정치, 팬덤정치에 특화된 매체다. 한 마디로 미국적이다. 선악 이원론과 양당 정치가 뿌리내린 사회에 걸맞다.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페이스북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SNS의 시작은 시공을 초월한 긴밀한 대화였지만, SNS는 결국 우리 인류를 대화 불가능의 시대로 이끌고 말았다. 지난 윤석열 대선 후보의 한 문장 메시지는 전세계를 대표해서 SNS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장 시급하게 ‘대화’를 회복해야 ‘공존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대화에는 시간이 든다. 나부터 상대를 존중하고, 경청해야 대화가 가능해진다. 어떤 집단은 모두 틀렸고, 어떤 집단은 모두 옳다는 전제 속에서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현실은 히어로 영화처럼 선과 악이 명쾌하게 나눠지지 않고, 매우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악의로 가득찬 행동이 엉뚱하게 선에 이르기도 하고, 선의로 시작한 일이 악에 도착하기도 한다. 정의를 위해 불의를 저지르기도 하고, 아주 정의롭게 불의를 만들기도 한다. 뭐, 그것까지 감안해서 결국 힘의 논리로 차악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알고 있다(그런데 그게 바로 지난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다).
지난 13년 동안, 트위터에서 활동하면서 나 역시 짧고 시원한 글에만 도취되어 갔던 것은 아니었나 하고 성찰해본다. 짧은 글, 쇼츠 영상으로 온통 도배되어 가는 세상에서 역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사람의 심연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닿을 수 있는 긴 호흡의 구닥다리 글을 쓰고 싶다. 시간을 들여 온전한 한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려가고 싶다. 그동안 초심을 잃고 무조건 많이 읽히는 게 장땡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단 한 사람이 읽더라도 제대로 읽히는 것이 더 좋겠다.
굿바이, 트위터.
2023. 2. 2.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