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진 Feb 24. 2023

혼자라는길 브랜드의일 / 우리 모두 혼자 걷고 있지만

고예빈, 조예원 <혼자라는 길, 브랜드의 일>



2015년 겨울에 나는 나의 회사를 만들었다. 이름은 ‘페이퍼클라우드’. 대학시절 친구들과 결성하자고 말만 무성했던 가상의 모던록 밴드 ‘페이퍼파이’의 앞 글자에 내 필명인 구름을 붙인 이름이었다. 디자인 브랜딩 업체의 출판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에게 확실한 사업  건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덜컥 뛰어든 일이었다.


스토리텔링과 출판이 주 업종이었던 페이퍼클라우드의 대표로서 나는 그 후 2년 남짓의 기간에 동화책 팟캐스트를 진행해서 분야 청취율 1위를 달성했고, 직접 기획하고 프레젠테이션한 스토리텔링 관광앱 아이템으로 1억 원 정부 지원사업 공모에도 선정되었다. 그러면서 두 권의 여행책과 한 권의 동화책, 한 편의 장편소설, 중편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그래픽노블을 쓰고, 게임 기획을 하는가 하면, 경주 금관총 복원사업의 스토리텔러로도 참여했다. 돌이켜 보니 대단히도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2년 뒤 내게 남은 건 수천만 원의 빚뿐이었다. 사업 건수만 많았을 뿐, 수익은 내지 못한 것이었다.


초창기에 사용하던 페이퍼클라우드 명함의 뒷면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느라 직접 관리하지 않고, 경영 일체를 남에게 맡긴 게 잘못이었다. 결국, 회사는 직접 경영해야 한다는 교훈만 얻은 채, 막막한 빚을 갚고 0원이 된 통장 잔고를 다시 채우기 위해 재취업해서 이를 악물어야 했다. 1년 정도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은 다음에야 되살아날 수 있었다.


해방촌의 독립서점 별책부록에서 진행한 독립출판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해, <오리의 여행 1>을 발간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오리의 여행 1>은 외주가 아닌 페이퍼클라우드 자체적으로 발행한 첫 공식 도서였다. 책이 인쇄되어 나온 날, 연인과 출간 파티를 열었다. 연인이 작고 노란 책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그 순간, 다시 살아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사람의 인연은 변해가도 그때의 고마움은 영원할 것이다.


<오리의 여행 1>을 내며 새로운 의지를 담아 로고도 지금의 형태로 바꿨다


이번에 별책부록의 출판 브랜드인 ‘프랙티컬프래스’에서 출간한 <혼자라는 길, 브랜드의 일>을 읽으며 좌충우돌했던 나의 과거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저자인 고예빈 씨는 천가방 브랜드, 조예원 씨는 여성복 브랜드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 나와 분야는 전혀 다르지만 소규모 스타트업 대표의 고군분투는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만화가 야자와 아이 님의 <내 남자친구 이야기>와 <파라다이스 키스>를 보며 한때 패션디자이너를 동경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미처 가보지 못한 길 위를 뚜벅뚜벅 걷고 있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일이 꽤 즐거웠다.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사업가로서는 판매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는 대목에서는 그야말로 ‘동병상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그런 치열한 고민이 어쩌면 새로운 것을 세상에 내놓게 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생생한 삶을 공유해준 두 분의 앞길에 용기와 행운과 평온이 있기를. 우리 모두 각자 혼자라는 길을 걷고 있지만, 길고 넓게 멀리 바라보면 분명 어떤 사람들과는 같은 방향으로 파도처럼 함께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외로워하되 슬픔에 지지는 말자고 다시 한번 주먹을 꼭 쥔다.


2023. 2. 24. 멀고느린구름.





매거진의 이전글 탈트할 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