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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Jun 01. 2024

아나콘다 잡은 충남의 골 때리는 그녀들

어느 하루의 이야기


2021년 6월은 밀려오는 업무의 파도에 질려 있을 때다. 집과 직장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모든 순간, 모든 날이 일의 연속이던 그 시절에 SBS 여성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방송이 시작됐다.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매 경기 진심을 다하는 축구 초보 여성들의 투혼을 보며 매주 울고 웃었다. 2022년 2월에는 여성 아나운서로 구성된 ‘FC 아나콘다’가 창단되어 방송에 합류했다. 아나콘다는 첫 시즌 모든 경기에 패배했다. 그즈음 나는 직장에서 그야말로 악전고투의 상황이었기에 단숨에 아나콘다와 영혼의 일체감을 느꼈다. 지더라도 지지 않는, 끝내 털고 일어나 다시 그라운드에 서는 모습에 큰 용기를 얻었다.


한 시즌이 마무리되고, <골 때리는 그녀들>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골 때리는 외박>에서 아나콘다 팀은 충남 예산으로 단합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충남 지역의 여성 축구팀인 ‘계룡 후레쉬 축구단’과 친선경기를 치렀는데, 그 경기 역시 아나콘다의 패배로 끝났다. 아나콘다의 승리를 간절히 바랐던 나는 아쉬울 수밖에. 하지만 경기 결과를 떠나 각자 자기 삶의 무대에서 유쾌하게 축구를 즐기는 일반인 여성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 건 좋은 수확이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이 여성 축구 인프라를 만드는 줄만 알았지, 이미 곳곳에서 꾸준히 축구를 하던 여성들이 <골 때리는 그녀들>에 영감을 준 사실은 몰랐던 것이다.


인생이란 알 수 없다. 아나콘다를 응원하던 내가 불과 2년 뒤, 아나콘다를 잡은 바로 그 ‘계룡 후레쉬 축구단’을 취재하게 됐다. 충남 지역의 한 소식지에 게재하기 위해서였다. 내 선택이 아니라 전임자가 이미 이번 호의 취재 대상으로 선정해놓고 간 것이었으니 더욱 신기한 인연이었다. 블로그를 통해 계룡 후레쉬 축구단 소은영 회장님과 연락이 닿았다. 마음 같아선 직접 인터뷰를 해보고 싶었지만, 빠듯한 일정 탓에 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SBS 인기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의 FC 아나콘다와 명승부를 펼쳤던 여성 축구단이 충남에 있다. 올해로 창단 19주년을 맞은 ‘계룡 후레쉬 축구단’ 단원들의 축구 열정은 무더위 속에서도 꺾일 줄 모른다.




충남도지사배 여자축구대회 1위에 빛나는 축구단


계룡 후레쉬 축구단(단장 온재경)은 지난해 열린 충남도지사배 여자축구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8년 동 대회 3위, 2021년 대전시장 배 전국 여자축구대회 3위에 이어 꾸준히 훈련한 결과다. 예능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최근 전국 곳곳에서 사회인 여자축구단이 창설되고 있는데, 계룡 후레쉬 축구단의 창단 연도는 무려 2005년이다. 여자가 무슨 축구냐는 편견을 뚫고 새길을 개척해왔다는 큰 자부심이 단원들에게 있다.


현재 50여 명 단원이 활동 중이고 이미경 감독을 비롯해 이승섭 코치와 프로팀 출신의 안상현 선수 등 전문 스태프의 지도를 받고 있다. 회장부터 홍보이사까지 10명으로 구성된 운영진도 탄탄하다. 구단이 어려울 때도 많았지만 단원들끼리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며 끈끈한 정으로 버텨냈다. 소은영 회장은 꼴찌부터 1위까지 다 경험해보며 확실히 축구는 혼자 할 수 없는 운동임을 느꼈다고 한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은 축구도 '인성'이 우선이라고 했는데, 다양한 이들과 함께 뛰며 한 사람으로서도 서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FC아나콘다와 맞대결, 축구 때문에 살아요


지난 2022년에 팀 블로그를 통해 <골 때리는 외박> 제작진에게 섭외 연락을 받았다. FC아나콘다는 전원 아나운서 출신으로 구성된 팀으로 당시 많은 시청자들 응원을 듬뿍 받는 팀이었다. 친선 경기였지만 긴장감 있게 경기를 치렀고 승리의 운은 계룡 후레쉬 쪽으로 기울었다. 방송 뒤 맘카페 등을 통해 구단이 널리 홍보되며 더 많은 단원을 모집할 수 있었다. 뛸 때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죽을 듯한 기분마저 들지만 경기가 끝나면 홀가분한 기분과 함께 한 주의 스트레스가 싹 날아간다. 축구를 하면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계룡 후레쉬 축구단의 그녀들. 축구의 매력에 함께 푹 빠져들 단원을 절찬리 모집 중이다.


입단 문의 | 소은영 회장(010-6340-3774)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fresh_gyeryong_/

블로그 | https://blog.naver.com/gyeryong_fresh







마치 <슬램덩크>의 결말처럼, 결과적으로 이 글은 게재되지 못했다. 어쩌면 브런치를 통해 더 널리 알려질 기회를 얻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겨울에 만난 여자사람 친구가 자기도 축구를 시작했다며 뿌듯한 표정을 짓던 모습이 떠오른다. 꼭 축구가 아니어도,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승부를 펼치고 있다. 비록 패배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승부는 명승부가 되어 우리 가슴에 보이지 않는 훈장을 남긴다. 단단한 자존감과 자부심은 그런 투명 훈장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19년 동안 구단을 단단히 지켜내며 끝내 우승컵을 들어올린 ‘계룡 후레쉬 축구단’처럼 말이다.


2024.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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