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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Aug 31. 2024

겪은 일, 겪지 않은 일

어느 하루의 이야기


글을 쓰는 사람은 겪은 일에 대해 쓰는 사람과 겪지 않은 일에 대해 쓰는 사람으로 나뉜다. 나는 겪은 일에 대해서는 거의 쓰지 않는 편이다. 쓴다고 해도 대개 실제 발생한 구체적 사건과 상당히 무관한 내 감상(혹은 공상) 위주의 글을 쓴다. 어째서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냥 내 실제 삶에 대해 쓰는 일은 내게 그다지 재밌는 일이 아닐 뿐이다. 현실은 현실 그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기도 쓰지 않는다. 이따금 아무에게도 보여줄 일 없는 셀카를 찍어두거나, 산책길 주변 풍경을 영상으로 남겨두긴 한다. 하지만 그걸 내가 다시 보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 듯하다.


내 인생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이 일생에서 겪을 한 번의 고비를 혼자 스무 번은 넘게 넘은, 드라마로 치면 주말 막장 드라마 같은 인생이다. 내가 쓰는 소설보다 내 인생 자체가 더 재밌다는 지인들의 말에 나 역시 공감한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살아 보면 재밌다기보다 영 피로하다.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은 일이 수두룩해서, 아마도 나는 구태여 내 삶을 글로 옮기는 피곤한 일 따위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소설 속에서 고난을 묘사하더라도 겪어 보지 않은 고통을 쓰는 게 더 즐겁다(?). 물론, 그렇다고 글과 내 삶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 리는 없다. 분명 글의 어딘가에 내 삶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부분은 뭔가 의식적으로 내 인생의 이 사건에 대해 써봐야지! 하는 식으로 글을 시작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나도 20대 때는 신변잡기식의 에세이를 수천 편 써댔다. 그러나 그때는 에세이보다 소설이 훨씬 인기 장르여서 내가 쓴 글은 다음 카페의 마이너리그를 떠돌 뿐이었다. 시대가 바뀌어 요즘은 에세이가 대세고, 소설이 마이너가 되었는데 나는 에세이에 영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아무래도 쉽게 성공할 팔자가 아닌 모양이다. 영화평 같은 것도 뭔가 정석 리뷰가 호평을 받는 듯한데, 나는 이제 그렇게 정연하게 쓰는 일에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좀 난데없고, 잉? 여기서 끝이야? 이런 의문 부호가 켜지는 글이 괜히 좋다.


한 사람의 인생이 마무리되는 방식을 지켜보면, 대분의 삶은 구성이 형편없다. 사람들은 천재 작가의 잘 짜인 스토리를 대하면 개연성이 뛰어나다고 하고, 막장드라마를 보면서는 개연성이 떨어진다고들 평한다. 하지만 인생은 막장드라마에 더 가깝다. 인생에는 더러 기적이 있고, 납득 불가능한 우연이 난무한다. 최선을 다해 시험공부를 한 녀석과 종일 잠만 자던 녀석 중에 누가 더 시험을 잘 볼까. 당연히 열심히 공부한 쪽이 시험을 잘 보는 게 개연성이 높다. 그렇지만 진짜 삶에서는 종종 잠만 자던 녀석이 승승장구한다. 시험을 더 잘 볼뿐 아니라, 자기 전에 심심해서 사두었던 코인이 자고 일어났더니 떡상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쓸 때 대체로 아무렇게나 쓴다. 아무렇게나 쓰는 편이 인생에 더 가깝다고 여긴다. 허공을 바라보다 어떤 단어나 문장이 내게 날아오면, 그대로 옮겨 놓고, 뒷수습은 천천히 하는데, 그 과정 자체가 삶과 비슷해서 재밌다. 그 삶은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할 일도, 고소를 당할 일도 없어서 매우 안전하고, 여차하면 우주의 탄생 전이나 별의 마지막 순간으로도 이동할 수 있어서 상당히 최첨단이다. 참고로, 나는 2008년 무렵에 아이패드가 등장하는 소설을 쓴 바 있다. 그 정도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겠지만 영 자랑할 게 별로 없어서 한 마디 첨가해봤다. 끝.


2024. 8. 31.


p.s : 광화문에서 책 읽고 있는 서울시 마스코트 ‘해치’는 이 글과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귀여워서 메인에 배치했다. 며칠 전에 광화문에 갔다가 만났다. 앗! 겪은 일을 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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