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의 이야기
봄에 낸다던 문예집 <아네일커피>는 왜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는가. 물어보는 사람은 딱히 없지만 나는 작년 가을에도 내내 비슷한 생각을 머릿속에 휴대하고 다녔다. 변명을 하자면, 작년에는 예정에 없던 에세이 출간 작업을 하느라 뒤로 미뤄졌고, 올해는 봄에 새 직장을 구하러 다니느라 미뤄졌다. 직장을 구했으면 여름에라도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볼 수 있겠지만, 야근이 별로 없다고 해서 들어간 새 직장에서 나는 며칠을 제외한 모든 날들을 야근했고, 주말까지 노트북을 켠 채 짜증을 냈어야 했다. 틈틈이 원고의 수정 및 교정 작업은 했지만 내 책을 편집할 만큼의 체력을 도무지 확보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초봄에 입사한 직장을 여름 끝에 퇴사했다.
<아네일커피>는 겨울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 올해 중에 출간한다면 10월이 마지노선이다. 스스로 족쇄를 걸기 위해, 10월 중순 경기도 광명에서 열리는 북페어 참가 신청을 하려 했다가 급속노화가 우려돼 관뒀다. 이제는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만 남았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내 소설 쓰기의 원동력은 연인에게 멋져 보이기 위해서였다. 수년 째 연인이 없는 형편인 나는 미약한 출세욕과 일단 제대로 쓰기 시작해야 느껴지는 소설 쓰기의 재미에만 기대고 있다.
원고 작업은 거의 끝났고, 편집 과정만 남았으니 ‘소설 쓰기의 재미’는 더 이상 없다. 출세욕으로 말하자면… 경제적 측면에서는 지금 내 삶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어서 딱히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악플에 시달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유명해지는 것 정도만 희망한다. 다만, 국제 문학상 한 두 개 정도는 수상하면 좋겠다. 조용하고 인상 깊게 활동하며 누군가에겐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남기고 싶다.
내가 만들고 있지만 <아네일커피>는 좀 훌륭한 문예집이 될 것이다. 글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중고서점에는 결코 내놓지 않을 책이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커피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이제 문학의 향기를 맡기 시작한 소녀소년이라면 “아니, 대한민국에도 이런 소설가가가가?”라며 당황하게 되리라. 또한, 집 나간 오리들이 이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감복하여 모두 귀가할 것이다. 잠깐, 일단 책을 발간해놓고 이런 얘길 쓰고 있어야 할 텐데…. 모쪼록 아직 존재하지 않는 책의 리뷰를 읽는 예외적 경험을 즐겨주시길 바란다.
엄밀히 말해 이 글의 제목은 ‘소설을 못 내서 쓰는 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에 소설을 못 써서 쓰는 글 뒤에 어째서인지 ‘1’을 붙여둔 탓에, ‘2’를 써야 할 것만 같아서 대충 비슷한 주제에 붙여봤다. ‘3’은 기대하지 마시길.
2024.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