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스터 츠구미’
그남은 자신을 ‘츠구미’라고 소개했다. 나는 ‘쭈꾸미’라고요? 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남은 익숙한 듯 담담히 정정했다. 아니요, 쭈꾸미가 아니라, 츠구미입니다. 작은 문어가 아니라 작은 새지요. 개똥지바귀라고 아시나요. 나는 쯔꾸미, 츠구미, 개똥지바귀로 이어지는 생소한 이름의 향연에 벌써 질리고 있었다. 참새 같이 생긴 샙니다. 검색해보시면 나와요. 아… 네네. 나는 어영부영 대답했다. 그남이 개똥참새이건, 개똥벌레이건 내게는 중요치 않았다. 한 마디로 그는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자, 그래서 제 이름이 뭐라고요? 쭈쿠미요. 아니요, 아닙니다. 그럴 수 있지만 부디 집중해주세요. 츠구미입니다. 미나모토 츠구미. 아 네, 츠쿠미 씨. 아뇨, 츠-‘구미’요. 다시 한 번? 츠구미! 좋아요, 좋습니다. 나는 “이제 당신의 이름을 알았으니 일어나도 되겠죠?”라고 말할 뻔했다. 사회를 살아가는 데 예의가 중요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7년 전이었던가, 소개팅 자리에서 만났던 남자를 작년 가을에 클라이언트로 만나지 않았던가. 과거의 내가 나쁘지 않은 인상을 심어놓은 덕분에 거액의 계약을 무난히 성사시킬 수 있었고, 그 덕에 만년 대리에서 벗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미스터 츠구미’ 역시 언젠가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란 것이다. 나는 힘껏 요조숙녀 역할을 수행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양식 돈가스 2인분의 계산까지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그래서 뭐 하는 사람이야? 다음 날 회사 탕비실에서 데이팅 어플 ‘설렘’을 요즘 힙한 거라며 소개해준 미라가 물었다. 글쎄, 뭐였더라. 쭈꾸미라는 책방을 한다고 했던가? 나는 떠오르는 대로 답했다. 뭐야, 결국 쭈꾸미였네. 미라가 말했다. 그러게, 그러네. 쭈꾸미 맞잖아! 나는 버럭 큰 소리를 냈고, 미라와 함께 깔깔 웃었다. 미라는 어쩌다 첫 매칭 상대가 일본 남자가 되었느냐고 이어 물었다. 나 요즘 JPT 준비하잖아. 미라는 너는 그게 문제라며 핀잔을 줬다. 로스쿨 편입 준비를 하며 변호사나 판사를 만나 보는 것은 어떠냐고도 말했다. 나는 아이돌 데뷔를 노리며 4대 기획사 대표를 만나보는 게 차라리 좋겠다고 맞장구쳤다. 미라는 누가 미혼이지라고 되물었다. 미혼이 아니면 어때. 미라는 그렇게 말하는 나를 향해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남의 인생 꼬이게 만들면, 니 팔자도 꼬인다. 어, 그래 미얀. 나는 빠르게 사과했다. 곧 이혼하겠다며 3년을 끌었던 남자와 나는 만난 적이 있었다. 미라는 몰랐다. 미라는 지금 다니는 직장으로 이직할 때 입사 동기로 만나 이제 고작 1년을 알고 지낸 친구였다.
탕비실 미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나는 어째선지 ‘책방 쭈꾸미’를 검색해봤다. ‘쭈꾸미 책방’과 ‘쭈꾸미 서점’, 표준어 ‘주꾸미’로도 검색했지만 아무런 결과값도 나오지 않았다. 거짓말까지 하다니 정말 최악이었다. 실은 일본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데이팅 어플을 지웠다. 이딴 건 다신 하지 말아야지 싶었다. 그리고 바로 그 주 주말 저녁에 새롭게 매칭이 된 남자와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남산 타워의 야경이 올려다 보이는 세련된 라운지 바에서 남자와 나는 2시간가량 제법 흥미진진하게 얘기를 나눴다. 키가 크고, 얼굴도 준수하고, 직장도 번듯한 이런 사람도 어플을 하나 싶은 남자였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남의 이름을 잘 기억할 수 없었다. 미라에게 보고할 때도, 상철님이었던가 하고 말했는데, 미라가 그건 예능 ‘나는 솔로’ 출연자 예명이라고 정정해줄 정도였다. 며칠 뒤 상철에게서 애프터 신청이 온 다음에야, 그의 본명이 ‘준철’이었음을 알게 됐다. 반은 맞았다.
준철은 자신이 아주 근사한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며 주말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주말에 늘 아무 일도 없어서 거절하지 않았다. 준철과 나는 토요일 오후에 합정역 앞에서 만나, 준철의 차를 타고 ‘카페 미라쥬’로 향했다. 김포 신도시를 지나 북한과 마주한 접경지 부근에 있는 외딴 카페였다. 레고 블록으로 만든 듯한 인공 야자수 나무 두 그루가 검은 유리문 앞에 우뚝 서 있고, 그 뒤로 중동의 사원 모스크가 연상되는 담백한 흙벽 건물이 놓여 있었다. 돔형 지붕 뒤로는 만월이 걸렸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미라에게 위치 정보를 전달했다. 미라는 “라져! 비상대기 중”이라고 답을 보냈다. 조금 안심이 됐다. 하지만 비상 상황은 전혀 엉뚱한 형태로 발생했다. 준철이 열어 준 검은 유리문을 지나 카페 미라쥬로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정면의 조리대 앞에 선 미스터 츠구미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래! 책방 쭈꾸미가 아니라 카페 미라쥬! 뒤늦게 선명해진 기억을 원망해봐도 이미 어쩔 수 없었다. 미라에게 “비상!”이라고만 짧게 카톡을 보내고, 준철과 어색하게 자리에 마주 앉았다. 내부는 외부와 전혀 달랐다. 캄캄한 동굴 같은 공간에 푸른빛이 벽면을 타고 북극의 오로라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빛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