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고요와 나는 저녁 시간이면 학교 옥상에 올라 내일의 날씨를 점치는 놀이를 하곤 했다. 놀이의 발단은 이렇다. 수능 모의고사에서 학교별 성적 상위권을 점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학생들을 시험의 수렁에 빠뜨리던 교장이 잠시 뭘 잘못 먹었는지 소풍 일정을 잡은 것이다. 때는 5월이었고 머리에 팬티를 쓰고 거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대도 용서받을 것처럼 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 내일은 비가 와."
고요는 단호했다.
"기상 예보에 내일은 인류 역사에 유래가 없는 맑은 날씨가 될 거라던데."
나는 없는 말까지 지어내며 고요의 단호함을 무너뜨리려 애썼다. 하지만 허사였다. 고요는 마치 대예언가처럼 고고한 자세로 단언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비는 와. 이건 바꿀 수 없는 운명야."
바꿀 수 없는 운명 따위는 없어라고 악다구니를 쓴 다음날 보란 듯이 폭우가 내렸다. 모두가 소풍 취소의 충격 속에 얼이 빠져 있을 때 고요만이 여유롭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교실 귀퉁이에서 읽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때 얼핏, 고요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었다. 인간에 대한 경외감도 사랑을 싹트게 하는 것일까.
그날 이후 우리는 날씨 점치기 놀이를 시작했다. 고요의 예측은 늘 정확했다. 반면 나는 중앙기상청의 실무자와 통성명을 할 정도로 친해졌지만 고요를 이기지 못했다. 고요는 마치 풀벌레 같았다. 풀벌레들은 그때 그때 순간의 습도와 기온으로 다음의 날씨를 직감해낼 수 있다잖은가.
나는 방 안 구석에 입을 꼭 다물고 앉아 있는 피아노를 바라봤다. 피아노의 입 속에도 검은 구름들이 잔뜩 지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간신히 이불 속을 빠져 나온 나는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아 건반 뚜껑을 열었다. 검은 먼지들이 어스름한 방 안에 퍼진다. 허공에 손을 휘히 저었다. 검은색과 흰색의 건반들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의 머리를 눌렀다. 도~. 시의 머리를 눌렀다. 시~. 제법 괜찮은 소리가 났다. 창 밖에서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뒷동산에 오를 수 없어서 일찍 집에 들어와 피아노 앞에 앉았었다. 바닐라를 피아노의 왼쪽 귀퉁이에 앉혀두고 '클레멘타인'이나 '등대지기'를 연주하곤 했었다. 고요는 지구에서 '클레멘타인'을 가장 잘 연주하는 아이였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고요의 반주에 맞추어 나는 노래를 불렀다. 바닐라는 내 손가락을 잡고 춤을 추었다. 소박한 무도회였다. 우리는 약속했다. 고요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면 반드시 '소박한 무도회'라는 이름으로 합동 공연을 하자고, 바닐라도 반드시 무대에 함께 서자고 말이다.
서툰 솜씨로 클레멘타인의 계이름을 눌렀다. 눅눅한 방 공기 때문에 소리는 쉽게 퍼지지 못하고 피아노 주위에서 맴을 돌았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노래를 불렀지만 더 이상 소박한 무도회의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요도 바닐라도 없으니까.
건반에서 손을 뗐다. 표현할 수 없는 말들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거대한 물음표가 나를 꾹꾹 눌러왔다. 바닐라를 찾는 것은 더 이상 무모한 일 같았다. 바닐라는 이 지구 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닐라는 무심결에 삭제되었다. 구름이 한 곳에서 한 곳으로 흘러가는 사이에.
바닐라를 찾는 일을 포기하고 나니 이번에는 고요가 문제였다. 마지막 한 방을 기다리던 홈런 타자처럼 고요는 내 마음의 마운드에 올라섰다. 고요의 청명한 눈동자는 내가 공을 던져주기만을 애처롭게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포수와의 호흡 불일치로 빈 볼만 연신 던져대고 있었다. 고요가 정확히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글쎄, 잘 모르겠는데. 실은 나도 궁금해서 너한테 물어 보려고 그랬어. 너가 고요랑 젤 친했잖아."
친구들은 미리 입을 맞춰 놓은 것처럼 똑같은 대답을 했다. 배후 세력을 밝히래도 묵비권만 내밀었다. '내가 고요랑 제일 친했나?' 나는 새삼 대단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 마냥 멍해졌다. 모두가 이 지구상에서 고요의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다른 이들이 고요에게 다소 무관심해도 되는 면죄부를 제공해주었다. 고요에게는 그래도 네가 있으니까, 최후의 최후에는 네가 지켜줄 테니까. 친구들의 출처 모를 신앙 앞에 나는 아뜩해질 따름. 마치 내가 어리디 어린아이 한 명을 꿰어다 시장 한 복판에 사탕 한 봉지와 함께 내다 버리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모두가 고요를 버렸지만, 진짜 버린 사람은 내가 된 것이다. 고요야 대체 어디 있는 거니! CNN에 출연해 미아 찾기라도 하고 싶었다.
고요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010-000-0909는 고요의 전화번호가 분명했다. 우리는 함께 휴대폰을 샀었고, 뒷 번호를 한 자리만 차이 나도록 맞췄었다. 고요가 0909, 내가 0910이었다. 고요의 집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아니, 계산해보니 고요와 연락을 하지 않은지 1년 하고도 3개월 23일이 지나 있었다. 고요는 1년 3개월 23일 전에 보낸 '시간이 흘렀다고 느끼는 것은 언제일까...'라는 문자와 함께 세월 속에 박제된 인물 같았다.
고요와 나는 왜 연락을 끊었지. 묘하게도 나의 생에서 그 페이지만 누군가 찢어간 것 같았다. 전화번호와 기억이 사라지자 고요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고요가 고요의 인생을 어디선가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고요를 죽인 것일까. 시간이,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