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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Nov 12. 2015

바람이 분다, 가라 / 우리는 서로 영원히 오해한 채로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우리는 서로에 대해 영원히 오해한 채로 


첫째는 우주의 나이가 유한하다는 것이다.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 킬로미터라는 유한한 것이므로, 밤하늘을 눈부시게 밝히려면 무한대의 거리에서 오는 빛이 있어야 한다. 즉, 무한한 과거에 형성된 은하가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밤하늘이 어두운 것은 우리의 시선이 어떤 별의 표면에도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순간 - 별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주가 시작된 시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 


두 번째이자 더욱 결정적인 대답은 허블에 의해 관측되었다. 바로 은하들이 우주의 팽창 때문에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은하가 우리의 눈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은하가 뿜어내는 빛은 약해진다. 눈부신 은하가 아무리 많다 해도, 거리가 먼 은하들은 더 빨리 멀어지므로 밤하늘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 172~173쪽


김광석의 노래를 듣는 일에 대해서부터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자. 김광석의 노래는 아름답다. 하지만 그 속에 배어있는 삶과 사랑의 신산함을 감각하게 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만다. 그의 노래는 가장 위로가 되는 동시에 가장 위로가 되지 않는 노래이다. 


어떤 드라마들은 지나치게 삶의 이면을 날 것으로 표현하고, 배우의 입을 통해 극본의 언어가 아닌 삶의 언어를 말하게 한다. 그런 드라마들 역시 위로가 되는 동시에 위로가 되지 않는다.  상처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일은 몇 발작 그 상처로부터 벗어나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반성, 혹은 지나간 날에 대한 그리움을 선사하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 그 상처의 한 복판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명한 폭력이 된다. 


한강 소설가의 근작 <바람이 분다, 가라>는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근원적인 아픔을 들춰내는 불편한 소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지인이 나를 찾아와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굳이 들춰내고 있는 상처를 내보이며 조언을 구한다면 


"그런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야. 별 수 없어. 누구가 눈 감고, 덮고 가는 거야. 시베리아의 백년설 아래 가려져 있을 수 많은 죽음들 마냥."


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을 그런 아픔. 


소설은 끊임없이 물어온다. 사람의 진실에 대해서. 세상의 진실에 대해서. 그리고 우주의 진실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진정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삼촌과 나의 대화를 빌려 이렇게 묻고 있다. 


왜 천체물리학을  배웠어요,라고 내가 물었을 때 삼촌은 대답했다.

처음과 끝을 알고 싶어서.

왜 그걸 알고 싶었어요?

어둠이 왜 어두운지, 빛이 왜 밝은지 알고 싶었어.

그의 얼굴 뒤로 파르스름하게 어두워지는 창을 나는 보았다.

목소리를 죽여 나는 물었다.

그래서 그걸 배웠어요?

배웠지.

처음과 끝을 알았어요?

아니. 


- 172쪽


우주는 유한하기 때문에 무한한 빛으로 환하게 밝아지지 않는다. 아직 우리의 시선에 닿지 못한 빛이 우주 공간의 곳곳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우주 공간은 텅 빈 것처럼 느껴지고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다.  숱한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그 빛이 달려오는 시간을 거슬러 그 빛을 보려고 하지만 우주 전체가 점점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빛을 보는 일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은, 우주를 이해하는 일보다 쉬운 일일까. 한 사람의 시작과 끝을... 그 사람이 했던 모든 말들과, 그 사람이 써두었던 모든 글들, 혹은 그려둔 그림들, 즐겨 듣던 음악, 아주 사소한 생활 습관까지, 그 모두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알게' 될까. 한 사람 속의 텅 빈 우주공간을 모조리 빛으로 채워 환하게 알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일까. 


소설 속의 정희는 친구 인주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그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정희는 친구의 억울한 죽음을 변호하기 위해서 라고 강변하지만, 사실 그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달의 이면'이었다. 달의 자전주기와 공전 주기가 일치하기 때문에 지구인은 영영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다. 달의 50%와 그 측면의 굴곡으로 9% 정도의 뒷면을 추측할 따름이다. 인주에게서 가려져 있던 부분을 정희는 알 길이 없다.  인주는 죽음으로써 영원히 정희로부터 멀어지는 운동을 시작했다. 삶의 조각들을 모아 인주의 삶이라는 전체를 그림을 완성하려고 하지만 한 인간의 삶에는 그 장본인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하물며 타인이 그것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하나의 물리이론으로 우주 전체를 설명하고자 했던 물리학자들은 양자이론을 통해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우주는 관찰자가 어떤 현상에 대해 관찰하고자 하는 순간 자기의 본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운동하던 것은 운동을 멈추고, 다양한 가능성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수렴된다. 수 많은 빛은 관찰자가 들여다본 한 곳의 공간에 집약된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모두 과거의 사실이며 우리는 영원히 물질이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우리는 영원한 과거 속에 머물고 있으며 현재를 살 수 없다. 


숱한 과거의 조각들을 모아 사람의 진실을, 세계의 진실을 발표하고자 하는 순간. 사람과 세계는 저 멀리로 멀어져 가고 우리는 고작 그것들의 이면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이 진실인가. 무엇이 진실이 아닌가. 우리는 그저 진실에 대한 관점을 말할 수 있을 뿐, 영원히 우리가 사전적으로 명명한 '진실'에 가닿을 수 없다. '진실'이란 단어조차 진실하지 않다. '처음과 끝'에 대해 배울 수는 있으나, 알 수는 없다.   


작가들은,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표출해내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조각들을 세상에 남겨놓으려 한다. 혹자는 그 작품들을 통해 창작자에게 가닿으려 하고, 혹자는 작품 외의 삶을 통해 창작자에게 가닿으려 한다. 작품을 통한 것은 공상이고, 작품 외의 삶을 통한 것은 사실인가. 아니면 그 둘을 종합한 것이 진실일까. 모르고 모를 일이다. 헛되고 또 헛되도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영원히 오해한 채로, 영영 이 세계의 시작과 끝을 알지 못한 채로... 수많은 빈 공간과 물음표 속에서도 불구하고 어째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일까. 왜 냇물 속에 든 '파란 돌'을 애써 주워들려 하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을 꿨어. 꿈에 보니 난 이미 죽어 있더구나.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몰라. 햇볕을 받으면서 겅중겅중 개울가를 뛰어갔지. 시냇물을 들여다봤더니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만큼 맑은데, 돌들이 보였어. 눈동자처럼 말갛게 씻긴...... 동그란 조약돌들이었어. 그중에서 파란 빛이 도는 돌을 주우려고 손을 뻗었지. 

그때 갑자기 안 거야. 그걸 주우려면 살아야 한다는 걸.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걸. 


- 343~ 344쪽


사람의 삶이란 결국 까마득한 배움의 과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주 오래도록 완전에 이르지 못할 것이며, 한 생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진실의 한 쪽면에 대해서만 전문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오래전 폭발해버린 별처럼 영원히 다른 별로부터 멀어지는 일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힘을 내서, 두 발로 땅을 박차고 달려가 빛이 우리에게 오는 속도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우주가 시작되던 순간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우주가 무한하다면 우리는 영원히 '파란 돌'을 움켜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주는 유한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살아 있는 것들은 살아가고자 한다. 태초의 어떤 본능에 의해서. 처음과 끝을 이해하고자 한다. 나와 너가 둘이 아니라 하나였던 순간을 기억해내고자 발버둥 친다. 아주 먼 과거에 그러한 순간이 있었던 것처럼, 아주 먼 미래에는 그런 순간이 있을까. 


사람은 언제나 스타트 라인 위에 서있다. 매 순간 삶의 가능성을 셈하고, 선택한다. 어둠 속에서 빛을 더듬는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조용히 읊조리는 것이다. 


가라. 


2011. 11. 14.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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