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단 한 번 날아오르는 순간 1

나는 기억한다, 그 한 순간을

by 장명진

아직 내가 촬영보조에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내가 당시 스승으로 모시던 당대의 사진작가 김중관 선생은 10월 말 즈음이면 어김없이 촬영장비를 짊어지고 철원으로 차를 몰아가곤 했다. 나는 세 번 정도를 선생의 그 길에 동행했다. 아주 추웠다는 느낌이 먼저 떠오르고 그 다음이 바로 그 장면이다. 단 한 번 날아오르는 순간. 어스름한 새벽의 얼음장 같던 하늘을 쩍 가르며 푸르르 푸르르 힘차게 날아오르던 흰두루미의 모습을 나는 작고한 옛 스승의 모습보다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토교저수지 위에 환영처럼 덮여 있던 잿빛 안개. 그 아래 꽝꽝 언 저수지 속을 흐르는 수 백의 물줄기들은 여린 바람에 퉁겨지며 원시적인 음을 발하고 있었다. 아직 채 밝아오지 않은 어스름 빛의 허공은 빽빽한 침묵으로 그곳의 모든 입들을 틀어막았다. 나와 선생과 안내를 나온 젊은 중위는 숨을 쉴 수 조차 없는 완벽한 광경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저수지 저 편에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흰두루미 한 마리가 고고한 명상에 잠겨 있었다. 선생은 뷰파인더 속에 흰두루미를 가두고 손을 떨었다. 30년째 사진을 찍어왔으며 그중 20년을 생태 전문 사진가로 이름을 날리던 이였다. 나는 선생의 곁에서 카메라도 꺼내지 못한 채 두 눈으로 저수지의 중심에 앉은, 시베리아로부터 날아왔다는 흰두루미 한 마리를 응시했다. 어째서인지 내 머리 속에는 ‘바이칼'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선생은 점점 심하게 손을 떨었지만 절대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고….


선생의 작품은 해외의 비평가들에게도 호평이었다. 사진예술이라는 것이 아직 부르조아지들의 여흥 정도로 인식되던 때에 선생은 판자촌 태생으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 것이었다. 선생이 스무 살 무렵 미군들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 구닥다리 코닥(kodak) 카메라를 주워 찍기 시작한 연작 <살아있는 판자촌>은 아직까지도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이상향 같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왼팔과 오른쪽다리를 잃은 백발의 노옹이 말할 수 없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머지 팔과 다리로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사진은 이미 브레송이나 카파 등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 사진에 감명을 받아 수 차례의 끈질긴 노력 끝에 선생의 문하에 들어 갔다.


선생은 문하생을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아직까지도 선생이 왜 나를 받아들였는지 명백히 알지 못한다. 간혹 몇몇 악질적인 호사가들은 선생이 동성연애자였으며, 젊고 패기가 있던 당시의 내게 매력을 느낀 나머지 받아들인 것이라고 기정사실처럼 황색 잡지에 글을 써대곤 했다. 선생이 살아 계셨으면 적극적으로 반론이라도 제기하셨겠지만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쪽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사진계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인 내가 공연히 그런 일로 다시 그쪽 사람들에게 화젯거리가 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선생에게는 죄송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선생이 사랑했던 여인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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