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단 한 번 날아오르는 순간 2

나는 기억한다, 그 한 순간을

by 장명진

선생이 사랑했던 여인은 ‘미카코’라는 이름을 지닌 재일교포 2세였다. 선생은 그녀를 1981년의 홋카이도에서 만났다. 선생이 한창 동양의 젊은 사진가로 촉망받던 시절이었다.


보그 재팬은 선생을 신년 특집 화보의 사진가로 초빙했다. 선생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으며 홋카이도의 공항으로 날아갔다. 차를 달려 몇 개의 산악 터널을 지나 낡은 간이역 앞에 도착했다. 기나긴 터널 끝에 설국이 나타나듯이 선생의 앞에는 ‘미카코'가 나타났다. 샤넬의 옷을 입은 ‘미카코'는 홋카이도의 겨울 숲 같은 순백의 피부를 지닌 여인이었다. 부드러운 머릿결은 짙은 검정빛을 띠어 하얀 피부와 대조를 이루었다. 170센티의 키는 모델로서는 작은 키에 속했지만, 결코 175가 넘는 다른 모델들보다 작아 보이지 않았다. 미카코는 그 누구보다 당당했고, 거침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선생은 미카코에게 완벽하게 매료당하고 말았다. 그의 생에서 그 이상 아름다운 여인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자신의 부족한 실력으로 그녀를 프레임 속에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 한 없이 부끄러웠다. 그녀가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지 않기를 바랐다. 그 달로 보그 재팬은 폐간되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리가 없었다. 최선을 다해… 목숨과 바꿔서라도 미카코가 지닌 아름다움의 10%만이라도 사진 속에 담아내야 했다. 영하 35도가량의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미카코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마비된 듯했다. 오직 선생의 눈과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과 뷰파인더와 미카코와 홋카이도의 숲만이 세상에 존재했다.


1차 촬영이 끝나고 근처 조그만 간이역 대합실에서 전기스토브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선생과 미카코는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미카코가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선생의 머리 속에는 ‘독재’, ‘군대', ‘민주주의', ‘분단' 따위의 정치적 낱말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속으로 연신 ‘제길’을 외쳤다. 침묵의 무게가 점점 늘어갔다. 미카코의 눈빛에서 기대감이 점점 스러져들었다. 그즈음이었다.


“ ‘들국화'라는 밴드가 있습니다. 노래가 아주 좋아요. 비틀즈 아시죠. 들국화가 바로 한국의 비틀즈랍니다.”


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아무런 말이나 나오는 대로 지껄여 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들국화’라니. 그러나 의외로 미카코의 눈빛이 다시 반짝였다.


“저도 비틀즈 좋아합니다. ‘아이 윌(I will)' 아시나요? 저는 그 노래가 좋습니다.”

“압니다. 들국화도 비슷한 곡이 있어요. ‘매일 그대와'라고.”

“그런가요. 혹시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듣고 싶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음치라서.”

“음치가 무슨 말입니까?”

“노래를 잘 못 부른다는 뜻입니다.”

“아아… 다이죠부데스. 아, 괜찮습니다. 꼭 듣고 싶습니다.”

“제가 노래를 불러드린다면 미카코 상은 저에게 뭘 해주실 겁니까?”

“글쎄요…”

“제 소원도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소원이요?”

“네 소원입니다.”

“하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생은 평소에 없던 넉살까지 발휘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를 불렀다. 미카코의 눈빛이 눈 위로 쏟아진 햇살 마냥 빛났다. 매일 그대와 아침 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매일 그대와 도란도란 둘이서 매일 그대와 얘기하고파…. 선생의 따스한 입김이 간이역 대합실의 허공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눈 덮인 플랫폼의 저편에서 이름 모를 새가 푸르르 날갯짓을 하며 기다란 휘파람 소리 같은 울음을 울었다. 미카코가 말했다.


“탄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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