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한다, 그 한 순간을
“탄쵸우!”
단정학이었다. 우리가 흔히 동화 속에서 보았던 머리는 검고 몸은 하얀 그 두루미였다.
“12월에서 1월 경이면 두루미들이 1000마리가량 한국으로부터 이곳으로 날아와요. 10마리 남짓의 극히 일부가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대부분은 이즈미로 날아가 그곳에 겨울을 보냅니다. 나는 이곳 홋카이도 태생입니다. 어릴 적부터 겨울이면 저 두루미들을 맞이하며 살았어요.”
미카코는 말을 멈추고 멀리에서 레일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고 있는 두루미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올해도 왔구나….”
혼잣말이었다.
“뭐가 왔다는 겁니까.”
선생은 정말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말을 붙이기 위해서 물었다.
“저기 저 두루미요. 두루미는 원래 혼자 행동하지 않습니다. 가족 단위로 날아다니지요. 하지만 저 아이는 내가 10년 전에 처음 봤을 때부터 저렇게 혼자였어요. 그때는 아주 어린 두루미였습니다. 사람들은 얼마 못 가 무리해서 낙오해 죽을 거라고 말했어요. 저는 왠지 저 두루미가 정이 갔어요. 그리고 저 아이가 오래도록 살아주기를 신년이 올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올해도 역시…. 다행히 올해도 기도가 효력이 있었어요.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미카코는 외톨이 두루미가 레일 위를 서성이는 모습이며, 부리로 눈 속의 무언가를 쪼아대는 모습, 텅 빈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 미카코 쪽을 바라보다 뒤돌아 어디론가 걸어가는 모습, 날개를 커다랗게 펼쳤다가 다시 접는 모습 등을 지켜보았다.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마음속에 REC 버튼이라도 눌러놓은 양. 선생은 미카코의 뒤편에 서서 왼쪽 눈으로는 두루미를, 오른쪽 눈으로는 미카코의 등을 각각 쳐다보았다. 그러다 무심코 카메라를 들어 뷰파인더 속에 그 모습을 담았다. 찰칵.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공백한 플랫폼을 손살 같이 달려가 두루미에게 닿았다. 두루미가 날개를 펼치더니 탁하고 날아올랐다. 땅이 흔들렸다. 흔들렸던가. 선생의 마음속 지층은 분명 흔들렸다. 미카코가 아쉬운 탄성을 내뱉었다.
“아….”
선생은 그것이 자신을 질책하는 소리 같았다. 카메라를 서둘러 가방 속에 넣어버렸다. 미카코가 뒤돌아 섰다.
“죄송합니다. 미카코 상. 저 때문에.”
미카코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괜찮습니다. 김상. 계절은 또 돌아오니까요.”
라며 미카코는 선생을 향하여 눈꽃이 흐드러지는 듯한 미소를 보였다. 선생은 셔터를 힘껏 눌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가슴속의 셔터를 눌렀다. 그날 미카코의 미소는 선생의 가슴속에 담긴 채 선생의 묘에 함께 묻혔다.
홋카이도에서의 화보 촬영이 끝나고 선생은 곧 귀국했다. 바로 다음 일정이 빼곡하게 잡혀 있었던 것이다. 미카코의 연락처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해 겨울, 선생은 미카코가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부음을 들었다. 선생의 나이가 서른. 미카코의 나이가 스물다섯이 되던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