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단 한 번 날아오르는 순간 4

나는 기억한다, 그 한 순간을

by 장명진
홋카이도에서의 화보 촬영이 끝나고 선생은 곧 귀국했다. 바로 다음 일정이 빼곡하게 잡혀 있었던 것이다. 미카코의 연락처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해 겨울, 선생은 미카코가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부음을 들었다. 선생의 나이가 서른. 미카코의 나이가 스물다섯이 되던 해였다.


공교롭게도 그때의 나는 스물다섯이었다. 덕분에 철원으로 향하는 내내 선생으로부터 미카코가 죽었을 때 그녀의 나이가 스물다섯이었다는 얘기를 주문처럼 되풀이해서 들어야 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에게 하는 얘기로는 부적절하다는 점을 지적해주고 싶었지만 촬영보조라는 신분에 충실하기로 했다.


“지휘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좀 절차가 까다로운 면이 있습니다. DMZ 쪽은 요즘 북한 관련 상황도 있고 선생님 안전 문제도 있기 때문에 촬영이 불가합니다. 민간인 통제선 쪽은 확인을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촬영 시간은 되도록 4시간을 넘기면 어렵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군부대 취재 및 촬영을 담당하는 공보장교 장 중위는 예의를 갖춰 말하고 있었지만 단호했다. 절대 타협은 없다는 기세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풀이 꺾였다. 당초 선생과 나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일 정도의 시간을 갖고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철원 DMZ와 민간인 통제선 안 쪽에서 머물다 가는 두루미를 찍으려 했었다. 하지만 군이 관할하는 민통선 안 쪽에 도래지가 있다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었다. 낭패였다. 군은 올 중순에 있었던 제2연평해전으로 인해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짐승을 찍는다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녀석들이 도무지 언제 어느 때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가장 좋은 한 컷을 찍기 위해서는 몇 달이고 한 장소에서 녀석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4시간 가지고는 도무지 그림을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촬영 가능한 날짜는 단 하루라니. 분통이 터졌다. 다시 장 중위에게 전화를 걸어 볼까도 했지만 그러다 그 마저 협조를 얻은 하루 4시간마저 날아갈까 봐 참았다. 결국 우리는 11월 15일 월요일 새벽 6시 동이 틀 무렵 토교저수지에서 날아오르는 새들을 찍는 것으로 최종 승인을 얻어냈다.


선생은 14일 오전, 하루 일찍 찾아와서는 나를 자신의 차에 싣고는 철원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일요일 오후에 잡아두었던 약속을 부랴부랴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괴팍한 구석이 있었다. 고집이 셌고, 막무가내였다. 영감이 오면 그 순간 사진을 찍어야 했다. 새벽 세네 시에 호출되어 불려나간 것이 부지기수였다. 사실, 그때 나는 그런 선생의 행동에 피로를 느끼고 있었으며, 촬영보조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시기였다. 일요일 오전 내가 자취하던 방의 초인종이 날카롭게 울리던 그 순간, 나는 결정했다. 아,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선생님.


철원에 가까워져 올 수록 드문드문 눈에 뜨이던 아파트들이 자취를 감추고, 드넓은 평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라도를 제외하고 한반도에 그런 광활한 평야를 갖춘 곳은 철원이 유일했다. 전라도의 평야는 언제 보더라도 풍요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철원의 평야에는 우수가 깃들어 있었다. 동이 틀 무렵이나 노을이 질 무렵에 철원의 평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 땅에는 어떤 탄식이, 가시지 않은 설움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전쟁의 영향이었을까. 전쟁이 멈추고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곳에 스며든 피는 온전히 가시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남과 북은 나뉘어 있었고, 서로 마주 보며 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촬영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지만 고장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어떤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것이었다.


우리는 2시간을 달린 끝에 동송 터미널 인근의 한 모텔에 짐을 풀었다. 사실 짐이라고 할 것도 별반 없었다. 선생은 품 속에서 구닥다리 코닥 카메라를 꺼내어 렌즈를 닦았다. 나는 마운트해서 사용할 망원 렌즈들의 상태를 살폈다. 조그만 모텔에 들어앉아 남자 두 명이서 말없이 카메라 렌즈를 닦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비장미가 느껴졌다. 무언가 음험한 비밀이 그들 사이에 깃들어 있는 듯했다. 혹은 무언가 거대한, 세계사를 흔들 정도의 나비의 날갯짓이 그곳에서 시작될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나는 푸른빛이 감도는 렌즈들을 들여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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