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단 한 번 날아오르는 순간 5

나는 기억한다, 그 한 순간을

by 장명진
선생은 품 속에서 구닥다리 코닥 카메라를 꺼내어 렌즈를 닦았다. 나는 마운트해서 사용할 망원 렌즈들의 상태를 살폈다. 조그만 모텔에 들어앉아 남자 두 명이서 말없이 카메라 렌즈를 닦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비장미가 느껴졌다. 무언가 음험한 비밀이 그들 사이에 깃들어 있는 듯했다. 혹은 무언가 거대한, 세계사를 흔들 정도의 나비의 날갯짓이 그곳에서 시작될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나는 푸른빛이 감도는 렌즈들을 들여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나를 보호소에 맡겼던 13살 무렵부터였다. 아버지는 내가 그토록 탐냈던 고가의 라이카 사진기를 건네주며 나를 떠났다. 아버지는 카메라 샵을 운영했는데 IMF 불황을 겪으며 가산을 탕진했다. 불황으로 카메라가 팔리지 않자, 새롭게 음식점을 내려다가 사기를 당했다. 음식점을 하자고 적극 권한 것은 어머니였다. 가산을 탕진한 것에 대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몇 주간 고성이 오간 것으로 기억한다. 자고 일어나 보면 집안의 물건 중 한 가지는 꼭 박살이 나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집 안 모든 물건에 차압 딱지가 붙었다. 어머니는 집안 곳곳에 붙은 차압 딱지를 떼내다가 욕실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했다. 아버지의 수염이 사극 속의 인물 마냥 자랐을 무렵 아버지는 라이카 카메라를 내 오른쪽 손에 쥐어주고는 내 왼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가 나를 보호소에 맡기고 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보호소 안에는 아버지가 집에 불을 지르고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장례식에 갔었던가… 기억이 흐리다.


김중관 선생을 만난 것은 내 나이 열아홉 살. 보호소에서 이제 막 독립해 나온 즈음이었다. 나는 신림동 고시원에 10만 원짜리 월세를 얻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한 달에 버는 수입은 가까스로 60만 원을 넘었다. 그래도 기초 생활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덕에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나는 담배도 술도 하지 않았다. 내가 사용하는 돈은 월세비와 음식비, 그리고 필름 현상료뿐이었다. 나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으므로 유일하게 나 자신의 여가를 위해 활용되는 돈은 필름 현상료뿐이었다.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전까지는 거의 종일 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라이카의 셔터를 누르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 그런 의무라도 부여한 것마냥 쉬지 않고 매일매일 사진을 찍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 내려는 사람처럼. 시장통의 상인들, 슬리퍼를 신고 나온 고시원의 커플들,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육교 위에 앉아 있는 행려자,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 다리를 다친 유기견, 벤치 위에 내려앉은 하얀 나비, 기하학적인 무늬로 부서져 있는 한 장의 벽돌까지 놓치지 않고 담았다. 절망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그러나 희망도 분명히 있었다. 그 절망 어딘가에는.


그날 나는 거의 길바닥에 누운 채로 비에 젖은 골목의 비탈길을 오르는 검은 고양이의 뒷모습을 찍고 있었다. 노을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비추듯 거리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주홍빛으로 반짝이는 비탈길을 오르는 고양이의 모습이 마치 성자 같았다. 로우 앵글로 고양이의 성스러움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만족스러운 구도로 사진을 찍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을 딛고 일어났다. 뒤돌아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눈 앞에 김중관 선생이 서 있었다.


“프로이십니까?”

“네? 아닙니다.”

“사진 좋아합니까?”

“좋아하진 않습니다.”

“음…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찍습니까?”

“잘 모르겠지만… 찍고 싶기 때문입니다.”


김중관 선생은 내 대답을 듣고 한참 동안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저는 프로 사진작갑니다. 어시스턴트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월급을 줍니까?”

“월급은 아니지만 한 달에 150은 벌게 해줄게요.”

“하겠습니다.”

“따라오세요. 강원도에서 화보 촬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처음 선생을 따라 촬영보조 일을 시작한 것도 철원이었다.라고 하는 남성 패션지의 특집 화보 촬영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선생의 문하생으로 삶을 시작했다. 선생에게 제자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내가 유일했다. 선생은 종종 술자리에서 나와 처음 만난 날에 대해 언급하며, 만약 그때 노을빛이 조금만 더 약했다거나 비탈길이 비에 젖어 있지 않았거나, 고양이가 얼룩무늬 고양이였더라면 나를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어느 조건도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그런 순간을 ‘운명'이라는 말로 지칭했다. 그리고 인생은 그런 순간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도무지 나와는 상관없는 것들로.



밤이 되자 철원은 무섭게 추워졌다. 모텔방의 실내 온도를 30도까지 올렸는데도 창 밖의 추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밖에 버티고 선 팽팽한 추위는 창문을 조금만 열어도 점령군처럼 밀려 들어왔다. 선생과 나는 맥주 캔을 하나씩 손에 쥐고 9시 뉴스를 시청했다. 뉴스에서는 100년 만의 혹한이 오늘 밤 철원에 상륙할 전망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몸을 떨었다. 이어서 뉴스에서는 ‘평화의 땅 DMZ에 찾아든 겨울의 진객’이라는 제목으로 재두루미 가족의 모습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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