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단 한 번 날아오르는 순간 6

나는 기억한다, 그 한 순간을

by 장명진
밤이 되자 철원은 무섭게 추워졌다. 모텔방의 실내 온도를 30도까지 올렸는데도 창 밖의 추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밖에 버티고 선 팽팽한 추위는 창문을 조금만 열어도 점령군처럼 밀려 들어왔다. 선생과 나는 맥주 캔을 하나씩 손에 쥐고 9시 뉴스를 시청했다. 뉴스에서는 100년 만의 혹한이 오늘 밤 철원에 상륙할 전망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몸을 떨었다. 이어서 뉴스에서는 ‘평화의 땅 DMZ에 찾아든 겨울의 진객’이라는 제목으로 재두루미 가족의 모습을 비추었다.


“벌써 뉴스에 나왔는데요. 선생님 저희가 찍을 게 쟤들인 거죠?”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선생의 등을 향해 내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아니다. 우리가 찍을 건 흰두루미야. 단정학이라고도 부르는. 머리는 검고 몸체는 흰 두루미.”

“걔들이 와 있겠습니까?”

“걔들이 아니다. 내가 찍을 건 단 한 마리야.”

“단 한 마리요?”


선생은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선생은 종종 그랬다. 갑자기 굳게 문을 걸어 잠그는 순간이 있었다. 마치 네가 올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라며 선을 긋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가버리는 여인처럼. 나는 언제나 그 문 앞에 망연히 남겨졌다. 한 번도 그 너머의 세계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보호소 앞에 세워두고 뒤돌아서던 아버지의 굽은 등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보호소와 아버지가 돌아서 가버린 세계는 삶과 죽음으로 나뉘는 세계다. 이편과 저편. 문 바깥쪽과 문의 안 쪽. 이분법의 세계는 혼란스러운 세계이기도 했다. 대체 나는 이 편에 있는가 저 편에 있는가 명백히 알 수가 없었으므로.


선생은 곧 잠이 들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모텔을 나서 정처 없이 거리를 걸었다. 해발 970미터에 달하는 금학산이 별빛들 사이로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산은 경이롭다. 거대한 산은 더욱 경이로왔다. 어디로 걷던지 고개를 들어보면 금학산이 있었다. 그 주위로 셀 수 없는 별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뽑았다. 음악이 끊겼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별들이 내는 우주음처럼 성큼 다가왔다. 사람의 생이란 역시 무엇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무슨 연유로 태어나서, 무엇을 위해 죽어가는가. 별들의 호흡에 비하면 인간의 들숨과 날숨이란 대체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은, 지구는, 태양계는, 우주가 생명을 지속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몇 번을 고민해봐도 나는 내가 아버지와 함께 불에 타 죽을 수도 있었던 인생과 지금의 인생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 생이란 한시적인 죽음의 유예기간일 따름이다. 모든 인간의 최종 목적지는 죽음에 불과했다. 그 과정이야 어떻든. 벌레들의 생은 사람보다 짦았다. 벌레들은 계속 울었다. 나는 한 동안 그 울음에 귀를 기울이며 걸었다. 그러다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플레이를 눌렀다.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거대한 산이 서서히 지워졌다. 이상은이 ‘신의 꿈'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세상은 결국 신의 꿈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선을 긋고 그 넓이를 재지만.

하지만 알듯이 꿈은 그리 친절하지만은 않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진 않지…


금학산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와 함께 내가 걸어왔던 길도 안개 속에 스러져버렸다. 이상은의 목소리 사이로 끼어드는 벌레들의 울음소리만이 현실감을 환기시켜 주었다. 안개 속을 더듬어 간신히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벌써 새벽 3시였다. 선생은 내가 방문을 나설 때와 동일한 자세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자리를 잡고 눕자마자 지쳐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단 한 번 날아오르는 순간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