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단 한 번 날아오르는 순간 7

나는 기억한다, 그 한 순간을

by 장명진
금학산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와 함께 내가 걸어왔던 길도 안개 속에 스러져버렸다. 이상은의 목소리 사이로 끼어드는 벌레들의 울음소리만이 현실감을 환기시켜 주었다. 안개 속을 더듬어 간신히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벌써 새벽 3시였다. 선생은 내가 방문을 나설 때와 동일한 자세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자리를 잡고 눕자마자 지쳐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나는 허공에 뜬 채로 잠들어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려 했으나 다가가지지 않았다. 선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숙소를 나서 헤쳐왔던 안개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회색 안개 속을 얼마나 날았을까. 눈 앞에 갑자기 커다란 터널이 나왔고 나는 그 속으로 흡수되는 것처럼 휩쓸려 들었다. 빠른 속도로 터널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터널의 양 옆으로 누군가의 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인생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애초에 나란 무엇이었나. 그것부터가 모호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분명 내가 죽은 것이라고 인식했지만 그것에 대해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터널을 통과하자 거대한 쪽빛 하늘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푸르른 하늘뿐인 세계였다. 나는 형체를 잃고 푸른빛을 발하는 조그만 구슬이 되어 있었고, 의지와 상관없이 위를 향해 계속 떠올라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같은 빛을 발하는 구슬 하나가 보였다.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라고 생각되었다. 아버지는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며 어디론가를 향해 재빠르게 날아갔다. 놓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모아 뒤를 따랐다. 힘을 모은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었는지 표현할 수는 없지만 분명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하늘의 쪽빛을 먹구름이 덮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난감한 표정으로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미안하다. 착오가 있었다.”


순간 아버지의 모습은 늑대이거나, 늙은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을 연상케 했다. 먹구름이 사라졌다. 하늘도 사라졌다. 아버지도 사라졌다. 나는 모텔 앞에 서있었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오니 내가 그대로 누워 있었다. 꿈인가.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어서 일어나라. 새들이 날아오르기 전에 먼저 도착해 있어야 해.”


선생은 어느 새 출발할 채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내가 기재개를 켜며 주춤주춤 일어나 앉자 선생은 텔레비전을 켰다. 푸르스름한 빛이 방 안을 물들였다. 텔레비전 모니터에는 히말라야의 설산을 오르는 남방 불교계 승려의 모습이 나타났다. 해발 8,091미터의 안나푸르나 제1봉의 모습에 눈이 시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마치고 촬영 준비를 하는데


“이것 봐라. 밤 새 눈이 왔구나. 잘하면 장관이 나오겠어.”

“그쳤나요 눈은?”


망원렌즈를 내려놓고 선생이 서있는 창가로 가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과연 눈이 꽤 높이 쌓여 있었다. 50센티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눈은 그쳤다.



우리는 숙소를 나와 장 중위와 만나기로 한 동송 시외버스터미널 앞으로 갔다. 장 중위는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전화를 걸었다. 새벽 5시였다.


“네네. 지금 가고 있는 중입니다. 5분 뒤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장 중위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해했다. 누구라도 남의 일 때문에 꼭두새벽에 일어나 추운 거리로 나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통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군용 레토나 한 대가 터미널 앞에 섰다. 장 중위가 비닐로 된 창을 내리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안녕하세요. 바로 출발하시죠. 따라오세요!”


밖으로 내리고 싶지도 않은 심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의 차로 장 중위의 레토나 뒤를 따랐다. 잠깐 밖에 서있었을 뿐인데도 손과 발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선생은 손가락이 얼어붙으면 큰일이라며 히터를 최대로 켰다. 얼어붙었던 손과 발이 서서히 녹아들었다. 눈이 내린 창밖의 풍경을 치어다봤다. 오래전 얼어붙은 마음은 만년설이 내린 안나푸르나처럼 녹지 않고 있었다.


한참을 달린 끝에 우리는 양지리 통제소가 있는 민간인 통제선에 도착했다. 통제소를 통과하면 민간인은 들어갈 수 없는 민통선 이북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모순되게도 민간인이 사는 마을 ‘양지리'가 있었다.


“1968년이던가요. 박정희 정권 시절 대북 선전용으로 조성된 마을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당시에는 드물던 슬레이트 집 같은 걸 지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전혀 잘 사는 마을의 전형이 아니게 되었지요.”


장 중위는 오래 숙독한 대본을 읽는 배우처럼 말했다. 우리가 여느 관광객처럼 아.. 하고 탄성을 내며 고개를 끄덕이자 꽤 흡족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그는 촬영 시 보안상의 유의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요점은 간단했다. 군사시설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선생은 장 중위의 얘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하늘빛의 변화를 살폈다. 아직 동이 틀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단 한 번 날아오르는 순간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