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단 한 번 날아오르는 순간 8

나는 기억한다, 그 한 순간을

by 장명진
장 중위는 오래 숙독한 대본을 읽는 배우처럼 말했다. 우리가 여느 관광객처럼 아.. 하고 탄성을 내며 고개를 끄덕이자 꽤 흡족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그는 촬영 시 보안상의 유의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요점은 간단했다. 군사시설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선생은 장 중위의 얘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하늘빛의 변화를 살폈다. 아직 동이 틀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두루미는 많이 와 있습니까?”


장 중위의 설명이 채 끝나기 전에 선생이 불쑥 물었다. 장 중위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네. 뭐 많이 와 있습니다.”


건성으로 하는 대답이 분명했다. 우리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일었다. 곧 장 중위는 들어가자고 말하며 레토나에 올랐다. 선생과 나도 차에 올랐다. 간단한 신분증 검문을 마치고 우리는 드디어 민통선 안 쪽으로 진입했다. 무언가 공기가 다른 느낌이었다. 마음의 문제이겠지만. 통제소를 통과하고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양지리 마을이 보였다. 1968년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이었다. 마치 1968년에 얼어붙어 해동되지 못하고 있는 냉동마을 같았다. 마을로 들어서 또 얼마간을 달려 우리는 목적지인 토교저수지에 닿았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굳게 닫혀 있는 철문의 쪽문을 열고 들어가 저수지 쪽으로 올랐다. 안개가 온몸에 걸렸다.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야트막한 경사면에 끝에 서자 저수지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쉬는 시간의 중학교 교실처럼 왁자했다. 100, 200 아니 멀리까지 유심히 들여다보니 족히 1000마리는 될 법한 새들이 저수지에 앉아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니, 그곳은 저수지라기보다는 거대한 호수에 가까웠다.


“올해는 쇠기러기들이 많이 왔군요.”


선생이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네, 군청 직원분한테 들은 얘기지만 유래가 없이 많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장 중위도 새들을 의식해 조심스레 말하는 것이었다. 그도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동이 트려면 좀 시간이 남았네요. 날이 추우니까 차에 들어가 있는 게 낫겠습니다. 장 중위님 차를 근처까지 가지고 와도 되겠습니까?”

“아, 그러면 새가 날아가지 않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조용히 몰고 오면 그 정도 소음에는 달아나지 않습니다. 저 녀석들도 충분히 떠들어대고 있으니까요.”

“네, 뭐 그렇다면.”


선생은 내게 손짓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는 표시를 했다.


“아 저기 죄송합니다. 혹시 차를 가지러 가시는 거면 제 차 보조석에 제 카메라가 있는데 좀 가져다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오케이 표시를 만들어 보였다. 장 중위가 꾸벅 목례를 했다. 나 역시 답례를 하며 비탈을 내려갔다. 장 중위의 레토나 운전병은 차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카메라는 보조석 위에 보란 듯이 놓여 있었다. 카메라를 보고 조금 놀랐다. 여느 카메라가 아니었다. 1994년에 생산된 이래 지금까지 세계 최고로 꼽히는 칼짜이즈 렌즈가 결합된 콘탁스G1이었다. 레인지파인더식 카메라 중 최상의 기종으로 정평이 난 클래식 카메라. 문득 장 중위에 대해 궁금해졌다.


시동을 꺼놓은 차는 금세 차디차게 얼어붙어 냉동마을의 일부로 동화되고 있었다. 철문을 열고 최대한 기척을 줄여 차를 몰아갔다. 저수지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차를 주차했다. 선생이 보조석으로 들어왔다. 장 중위는 손님석에 올랐다. 우리 세 사람 사이에는 아까의 긴장감이 다시 감돌았다. 선생도 어색했던지 장 중위에게 어색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중위님은 고향이 어디십니까?”

“부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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